Abstract

해군연료창은 일본 해군에서 주요 전력인 함선과 항공기의 운용에 필수적인 연료의 수급을 담당한 주요 부서였다. 1921년 법제화를 통해 처음으로 해군 조직 내에 등장하였지만, 1872년 해군성 설립 이전 시기에서 기원을 찾는다. 그 조직은 해군 연료의 변천과 필요에 따라 개편을 거듭하였고, 태평양전쟁 직전인 1941년 5개 연료창 체제를 확립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가나가와縣 오후나의 제1연료창, 미에縣 요카이치의 제2연료창, 야마구치縣 도쿠야마의 제3연료창, 후쿠오카縣 시메의 제4연료창, 그리고 조선 평양의 제5연료창이 그것이다. 이후 태평양전쟁의 개시와 함께 타이완의 제6연료창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 ‘특별연료창’이라 불린 제101·제102연료창이 추가로 설립되었다. 1945년 패전 시까지 이 체제가 유지되었다. 액체연료를 취급한 다른 연료창들과 달리, 제4·제5연료창은 석탄의 채굴과 연탄의 제조를 담당하였다. 이러한 해군연료창에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되어 투입되었다. “해군군속자료(2009)”를 통해 확인되는 규모는, 제3연료창 211명, 제4연료창 4,323명, 제5연료창 3,900명 및 제101·제102연료창 48명 등 총 7,096명에 이른다. 특히 석탄 채굴을 담당하는 제4연료창과 제5연료창에 다수의 인원이 투입되는 점은, 노동력 수탈에 초점을 둔 조선인 강제동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자료상의 한계로 구체적인 동원실태 파악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먼저 211명의 투입이 확인되는 제3연료창의 경우, 사망자 20명의 기록에서 주요한 동원 실태가 파악된다. 오우라유조소에서 연료 疏開 작업 중, 1945년 5월 10일 미군 B-29의 공습으로 사망하였다. 이들의 기록 중에서 처음에는 노무자로 동원되었다가 군속으로 전환된 양상이 파악된다. 두 번째로 4,323명이 투입된 제4연료창의 경우, 경남 지역에서 다수의 인원이 동원되어 투입되었다. 한편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도쿠시마현 나카군 하노우라에 파견된 제2채탄부를 통해, 감시, 배고픔 등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이를 피하기 위한 ‘도주’가 진행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3,900명의 투입이 확인되는 제5연료창의 경우는, 1907년 평양광업소로 출발하여 조선인 노동력에 기반을 두고 석탄을 채굴하였다. 1910~20년대 2천5백 여 명의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채굴된 석탄 중 우량 품질의 석탄들은 도쿠야마 연탄제조소로 반출되었고, 우수한 품질의 연탄이 제조되었다. 제5연료창 자체에서도 제2種 炭을 기반으로 주로 해군용 연탄을 제조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5연료창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존재했던 임금의 ‘민족 차별’에 대한 내용이 ‘규칙’으로 명문화된 공문서가 확인된다는 점이다. 1944년도 󰡔海軍公報󰡕의 내용을 통해 조선인의 임금은 일본인의 그것에 비해 62.5%에 불과한 임금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제5연료창 이외의 연료창 뿐만 아니라, 조선인이 투입된 모든 해군 부서에도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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