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권태석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조선민족대동단 조직에 참여했다. 대동단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계급을 수용하는 민족통일적 성격을 지녔다. 1920년대에는 서울파 사회주의 운동가로 신간회 등의 민족통일전선 구축을 주도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주의를 강조하는 ML파와 노선투쟁을 벌였다. 해방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 합류하여 선전부 책임자가 되고, 우익 계열의 포섭에 나섰다. 건준이 좌경화된 후에는 중도적 우익 진영에 합류하여 당통합 운동에 매진했다. 그 결과 신한민족당이 창당되고, 한국독립당을 중심으로 일부 우익 정치세력이 통합되었다. 이후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자 권태석은 적극적인 참여를 주장했다. 좌우익을 포괄하는 민주적이고 독립된 정부 수립을 위해 수용했던 임정법통론을 철회하고, 미소공위에 대한 기민한 대응과 협조를 강조했다. 당에서 제명된 후에는 민주한독당을 창당하고 민족자주연맹에 합류하여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1947년 9월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에 의한 총선거 실시에 대해서도 권태석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유엔임시위원단과의 면담에서 한국 독립이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협력을 통해 달성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권태석은 일제강점기의 효과적인 독립운동 전략이자 해방 공간의 주요한 국가건설 노선인 민족통일운동의 흐름을 관통한 인물로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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