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글은 일제가 경신참변을 일으킨 과정과 실상을 대종교의 피해상황과 그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일제는 3·1투쟁으로 고양된 반일민족투쟁 세력을 초토화하기 위해 1920년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에 따라 19사단과 20사단을 동원하여 간도한인사회를 초토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한군정서를 중심으로 한 한인무력세력이 대일전쟁사에 최대의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대첩’을 거두었다.BR 그러나 일제는 간도한인세력을 초토화시키는데 몰두하여 민간인에 대한 야만적인 학살행위를 자행하였다. 일제가 저지른 참상은 의병에 대한 야만적 진압을 시작으로 만보산 참상, 임오교변, 제암리교회 참상, 관동대지진 참상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중 ‘경신참변’은 일본 정부가 주체가 되어 저지른 가장 ‘야민적’인 학살행위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BR 특히 일제 19사단 중 기무라지대는 대종교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성립된, 간도무장세력 중 가장 강력한 대한군정서를 초토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력조직이었다. 이는 대한군정서가 일제에 가장 위협적인 조직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기무라지대가 대종교의 중심지 왕청현을 초토화시킨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사단이 학살한 한인은 일제의 통계에 따르면 522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 일제는 기무라지대가 학살한 간도한인은 86~94명이라고 주장하였다. 무엇보다 「사상자인명일람표(조선인)」에서 30명 이상의 대한군정서 요원이 확인된다.BR 그러나 일제의 피해 통계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3,469명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이다. 사실 일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경신참변의 규모와 그 야만행위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는 앞으로 학계가 지속적으로 파해쳐야 할 분야이다.BR 대종교 측의 경신참변에 대한 인식은 『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대체로 (1) 피해상황정도와 대종교에 끼친 영향, (2) 경신참변과 대한군정서의 관계, (3) 중국당국과의 관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대종교 측은 경신참변의 비극을 되새기면서 경신참변이 대종교 성장과 항일민족투쟁에 비극적인 악영향을 끼쳤으며, 일제가 대종교인으로 이루어진 대한군정서를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 경신참변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중국당국과 대한군정서는 일정한 협력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장작림 정권은 일제에 적극 협력한 점에서 경신참변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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