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공자가 『춘추』를 집필한 이후 현대의 동북공정에 이르기까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존재하였던 많은 국가들은 관제학자들을 동원하여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역사서술을 반복해왔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서술전통의 확립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서가 잘 알려진 『사기』이다. 『사기』는 통일된 중국의 패권을 장악한 한나라가 이전과는 다른 확장된 사회의 통치이데올로기로 중화주의와 천하 중심주의를 만들기 위해 역사라는 테마를 이용하였다. 『사기』는 중화주의와 천하 중심주의의 확립을 위해 화이공조론, 대일통주의 등을 창안해야 했으며, 한 이전의 중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동이의 업적마저 도용하여야 했다.BR 중국의 역사 서술은 『사기』를 중심으로 하여 『사기』 이전과 이후, 세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사기』를 기준으로 한 것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의 기록에 있어서 『사기』의 기록과 『사기』 이전의 기록에 인식의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들을 통해 『사기』는 중국 역사왜곡과 중화주의 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고조선・동이 역사의 왜곡과 축소는 『사기』에서 시작되고, 그 방향을 확정하였다.BR 『사기』 이전의 문헌들에 나타나는 고조선과 동이는 지극히 바람직하고 올바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시기 고조선과 동이를 가장 상세하게 언급한 대표적인 문헌은 『산해경』으로 이러한 우호적인 논조는 동이족이 주도하였던 중국 초기문명의 영향 때문이라고 판단된다.BR 한편 『사기』이후의 중국 문헌은 『사기』의 중화주의를 계승하고 심화하여 보다 빈번하고 과감하게 자의적인 역사서술을 자행하였다. 『위략』같은 문헌은 없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조작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극심한 사실 왜곡은 고구려의 고토수복 활동과 국력의 신장으로 조성된 중국의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시기의 사서 『위략』, 『진서』, 『구당서』 등은 『사기』가 정립한 중화주의와 고조선과 동이 역사의 청산이라는 역사서술의 방향을 계승하였을뿐 아니라 이를 더욱 심화하여 일상적인 전통으로 만들었다.BR 세 시기의 문헌들을 비교한 결과 『사기』 「조선열전」에 등장하는 ‘진번조선’에 대한 기존 해석이 오류라는 것과, 『위략』에 등장하는 ‘진개의 고조선 침략’기사가 창작된 허구였다는 사실 역시 파악할 수 있었다.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Disclaimer: All third-party content on this website/platform is and will remain the property of their respective owners and is provided on "as is" basis without any warranties, express or implied. Use of third-party content does not indicate any affiliation, sponsorship with or endorsement by them. Any references to third-party content is to identify the corresponding services and shall be considered fair use under The Copyright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