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립거래소는 1569년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정고문이었던 토마스 그레샴이 런던시 정중앙에 설립한 영국 최초의 거래소이다. 왕립거래소는 본래 그레샴의 의도에 따라 유럽 최초의 거래소인 앤드워프 거래소를 그대로 본떠 만들어진 탓에 영국 고유의 건축적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1666년 런던 대화재를 겪으며 런던 출신으로 시가 주관하는 주요 의전행사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린 에드워드 저먼에 의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저먼이 디자인한 거래소는 해당 건물을 넘어서 런던시와 영국 전체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널리 활용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1838년 다시 화재를 겪으며 소실되기 전까지 저먼의 거래소는 “대영제국의 영광” 또는 “런던의 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국가발전의 핵심동력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영국 건축사에서 저먼이 디자인한 거래소는 이니고 존스와 크리스토퍼 렌과 같은 왕실 전속 감독관들이 사용한 고전주의 건축언어를 어설프게 모방한 조악한 숙련공의 솜씨로 평가절하 되어왔다. 본고는 영국 건축사를 지배하는 고전주의 중심의 역사서술을 재고하며 저먼의 왕립거래소 디자인을 17세기, 특히 대화재 이후, 런던의 건축적 특징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당시 영국 사회가 공간을 사유하는 방식인 테아트룸 문디 개념을 근거로 거래소의 건축적 정체성을 당대의 시선에서 재해석하였고, 저먼이 사용한 건축언어의 원근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왕립거래소가 재현된 방식에서 연극성이라는 개념을 도출하고 이와 함께 왕립거래소의 공간특수성이 구축되어가는 과정을 분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