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789년 프랑스 혁명과 함께 프랑스 최초의 국립 박물관이 루브르에 설립된 이후 비 유럽권 유물에 대한 성격 규정은 프랑스 박물관 역사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어 왔다. 예술적 가치와 함께 타 문명에 대한 인문학적 혹은 과학적 탐구의 도구로 여겨졌던 이 유물들은 19세기 프랑스 박물관의 전문화 과정에서 하나의 독립된 미학에 기초한 예술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고고학, 인류학, 자연사 박물관 등에 소장되었다. 예술과 과학 사이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던 이 유물들은 오랜 시간 동안 그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들이 속한 지정학적 근원이 이들 작품 성격을 규정짓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BR> 프랑스 문화사에서 Extreme-Orient 이라고 불리는 동아시아 3국의 예술품은 16세기 유럽 국가들의 지리상의 발견 시대에 처음으로 유럽 소장가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하여 이국적 취향과 호기심의 대상물로써 cabinet de curiosite(호기심의방)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프랑스 미술사학자 앙투안 슈나퍼(Antoine Schnapper)는 cabinet de curiosite의 소장품 성격을 희귀성과 유일성으로 규정하며 이 곳에 소장된 동아시아 유물은 미지의 세계를 상징하는 오브제로써 과학적 탐구의 대상물이었다고 파악하였다. 호기심의 대상에서 학문적 연구의 도구로 그리고 이국적 취향의 소장품에서 프랑스 장식 예술의 주요 요소로 편입된 동양 유물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수집되기 시작한 비 유럽권 지역의 인류학적 혹은 민속학적 유물과는 구별되는 다중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크리스토프 포미안은 이러한 오브제의 성격을 semiophores라고 규정하였으며 이것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실질적인 의미를 알 수가 없으나 단지 그 사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소장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지칭한다. 이 사물이 소장의 가치를 뛰어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18세기 중엽 유럽에서 그리스 고전 예술품의 박물관 수용 과정에서 나타났던 미학적 분석이 선결 되어야만 했다. 서양 미술사에서 동아시아 예술품은 새로운 취향과 양식을 유발하였고 근대 산업 미술 혹은 장식 예술의 영감의 원천으로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의 독립된 미학 체계를 갖춘 예술품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프랑스에서 동아시아 유물을 전문적으로 보관 전시하는 박물관이 출현하는 시기라고 규정 할 수 있다.<BR> 이 논문에서는 1879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동아시아 유물을 소장 전시하는 박물관이 에밀 귀메(Emile Guimet)에 의해 설립된 배경과 역사를 고찰해 볼 것이다. 귀메 박물관의 성립 역사는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에서 나타난 동아시아 유물에 대한 수용과 인식의 변화를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연구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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