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음악과 미술 간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고찰은 시각과 소리, 공간과 시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에 의미있는 균열을 가한다. 이에 본 논문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에 의해 세워진 매체특정성(medium specificity)의 순수성에 대치되는 매체융합적 시도를 소개하고 있다. 매체융합이란 아이디어는 19세기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 의해 총체예술론이란 이름으로 개진되고 예술비평가 샤를 보들레르에 의하여 그 현대성을 인정받으면서 이미 모더니즘의 태동기부터 발현되어 왔다는 점에서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오류를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BR 본 논문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을 통해 음악과 시각예술이 보여준 유의미한 관계맺음에 대하여 고찰한다. 1969년 제작된 백-아베 신디사이저는 최초의 비디오 이미지 합성기계로 알려져 있고 녹화되거나 방영 중인 비디오 시그널에 직접 변형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방송 그래픽 효과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획기적 발명물이다. 그러나 시각적 효과의 측면에서만 백-아베 신디사이저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 기계의 일부분만을 아는 것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음악의 쇄신 혹은 지평을 확장하기 위하여 시간성을 탐구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음악의 창작을 위해 퍼포먼스, 시각적 음악, 텔레비전 아트 및 비디오 아트 등 시간적 관계를 비틀고 조작할 수 있는 매체를 다루었다. 이때 선적 시간 개념에 반기를 들고 다다적 전략을 인용하여 시간에 공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음악의 새장을 열고자 했다. 이 공간성의 문제는 백남준에 의해 시각화 전략으로 해석되었으며 전자 공학기술을 통해 음향적 입력을 시각물로 출력시키는 방식으로 발현되었다. 특히 백-아베 신디사이저의 편집기능은 선적 시간체험을 해체하고 결과적으로 강렬한 시각물을 통해 음악이란 무엇을 추구해야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제공한다. 백-아베 신디사이저는 단순한 이미지 합성기가 아닌 시각화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로서 해석된다. 이와 같은 이해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그의 음악적 사고의 현현으로 재고할 가능성을 남긴다.BR 백남준의 작업은 음악 하에 타 장르들을 위치시키고 사용하는 바그너적 총체예술론에서 전환하여 예술 장르간의 위계관계를 지워냈으며, 음악을 통해 매체 간에 이미 존재하던 공통점을 재발견하여 사용하는 플럭서스의 전략을 통해 장르 간, 매체 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후기매체적 (post-medium) 상황을 선도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음악에서 출발하여 시각예술과 과학기술을 아우르는 백남준의 예술관은 매체 간의 융합을 통한 창조의 선봉장으로서의 그의 입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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