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실체를 연구하는 것은 문헌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일이다. 4세기에서 6세기 중엽까지의 사회성격과 관련하여 왜인설, 백제 정복설 등과 같이 외부적인 관점에서의 주장과 마한론과 같이 내부적인 관점에서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이한 점은 1990년대 새롭게 제기된 왜인설이나 확대된 마한론이 모두 6세기 중엽까지 영산강유역이 백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BR> 각 연구자들의 관점을 비교해 본 결과, 고고학 자료에 의한 객관적인 해석보다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고고학 자료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기본적으로 내부적인 관점에서 이 지역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되었고, 또 외부와는 어떠한 관계를 가졌는가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실체는 어디까지나 재지세력에 의해 형성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고대사회의 실체를 고고학 자료가 아닌 문헌 자료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에 4세기 후반 이후에는 마한이라고 지칭할 수 없게 된다. 또 백제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직접지배를 하게 되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떻게 전방후원형 고분이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연구되어야 할 문제이다.<BR> 앞으로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실체를 좀 더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는 고대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검토해야 하고, 또 어떠한 요인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문헌 자료의 검토와 당시 국제적 정세를 고려하여야 한다. 어떠한 주장에 앞서 세밀한 분석과 합리적인 해석이 요구되지만 자신의 관점이 적절한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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