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연·월·일·시에 따른 기록이다. 이것에는 자전적 행력 기록과 국왕와 중앙정부, 관아의 공적 기록이 있다. 후자의 공적 일기에는 공문서와 공적기록을 집성한 관청일기, 시강원 일기처럼 특수한 부서에서 생성된 일기가 있다. 일가는 반드시 산문 기록물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일기’는 산문을 중심으로 사항과 사실을 直書한 것을 말하며, 歌詠을 통해 심회토로를 위주로 하거나 함축의 미학을 구사한 것은 제외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기’ 가운데는 타인에 의해서 實記 대신 작성된 行錄의 부류가 있으나, 이것들은 엄밀한 의미의 일기로는 보기 어렵다.BR 일기 가운데서도 공적 보고와 기록의 목적을 지니지 않는 개인일기는 형식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다. 저자가 생활한 지역의 명소나 풍속, 만난 사람들과의 교유관계, 官人의 일상에 나타난 여러 정치 상황 등 다양한 내용들이 적혀있어 조선시대의 소소한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개인일기는 현대인이 연상하는 협의의 일기와 부합하지 않는다. 근대 이전의 일기는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진술을 위주로 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공적, 사적 행력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는데 그치고 감상을 배제한 경우가 많다. 또한 남에게 보이거나 출판하려는 의도 없이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이나 동료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에서 집필하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 일기는 曆書에 적는 일이 많았으며, 陰晴을 기록했다. 일기는 그날그날의 번다한 일을 적어 비망의 자료로 삼은 것을 넘어서, 天道의 운행을 살핀다는 뜻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개인일기는 특히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삶의 기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편, 사대부 지식층은 향촌 속에서 자신과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려고 분투하고 학문적 탐색을 하였으므로 그들이 남긴 일기는 향촌생활의 생생한 모습을 담는 경우가 많았다. 사대부 지식층은 대부분 한문으로 일기를 작성했지만, 간혹 한글로 일기를 적기도 했다.BR 개인의 일기는 행력만을 간단히 적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작성한 시문, 서찰 등도 모두 등사해 두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해당 저자의 문중에서는 일기에 수록된 시문을 선별하여 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일기는 초고의 형태로 전해지는 경우가 있고, 후손들이 문집을 간행하면서 일기의 전체나 일부를 문집에 정리하여 수록하는 경우가 있다. 본고는 기왕의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일기의 공적 기록과 사적 기록에 대해 개괄하고, 사적 기록인 개인 일기 저술가의 계층성과 지역성에 대해 살펴보았다.BR 개인일기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국내 편력 일기, (2) 이역 長程일기(조천연행, 심양왕환 기록, 동유기, 표해록, 피로일기), (3) 自敍 일기(축년일기, 단기일기, 상례일기 등), (4) 유배일기, (5) 사건일기, (6) 진중일기, (7) 사환일기(암행일기, 부북일기 포함), (8) 경연관 일기, 시강관 일기와 거가독서일기, (9) 간역일기와 상소일기, (10) 천주교 순교 일기BR 조선시대 개인일기의 저자들은 詞章에 능한 문필가들과 중간 무인층, 일부 사대부여성에 대체로 국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서술의 시각이나 서술 태도, 서술방법은 계층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개인일기는 기존의 사료에서 결락된 부분을 보충하거나 추정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일기’의 사실 인증의 층위, 기록물로서의 가치, 문체적 특성 등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가 더 진행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