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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淸 문학의 “나”는 누구인가? - 時文 科文과 古文 序文 속 일인칭의 역학관계

The ideal dynamic of preface composition in the Ming and Qing constitutes the inverse of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regime: instead of an evaluation of texts whose authors are temporarily anonymous, prefaces to literary collections should result from face-to-face acquaintance and ensuing friendship, followed eventually by an exchange of texts. Increasingly over the course of the Ming and Qing, prefaces make use of the first-person pronoun yu to draw the reader into the intimate friendships that serve as context for the sharing of writings. On looking more closely into the new popularity of first-person usages, however, we find that the apparent contrast with civil service examination writing is neither trivial nor simple: yu serves to indicate that the individual voice has emerged as a newly pressing problem in this period. Indeed, in other prefaces, the first-person wu begins to index a more abstract, even hypothetical mood, reminding the reader of the complicated dynamics of abstraction and reflexivity characteristic of the “representative speech” thought to define modern prose examination essays (shiwen) as a genre.BR Classical prose (guwen) of the Ming and Qing makes itself a comfortable home in opposition to examination essays as a genre and consistently represents itself as a privileged expression of the author’s inner state. Yet insofar as classical prose was produced and consumed through social practice, this distinction between writing for oneself and writing for another turns out to be difficult to maintain. The particular emphasis some Qing preface writers place on concrete accounts of personal relationships is symptomatic of a broader unease with this alienated literary sociality: prefaces to collected writings tend to become more careful about distinguishing between individuals that the preface writer knows personally and those he does not. It should come as no surprise that in the seventeenth century, once “speaking for others” had become the conventional standard for examination writing, and writing prefaces for their social exchange value had come to dominate the literary market, authors’ choice of first-person pronoun becomes increasingly fra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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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개인일기의 종류와 기록자 계층

일기는 연·월·일·시에 따른 기록이다. 이것에는 자전적 행력 기록과 국왕와 중앙정부, 관아의 공적 기록이 있다. 후자의 공적 일기에는 공문서와 공적기록을 집성한 관청일기, 시강원 일기처럼 특수한 부서에서 생성된 일기가 있다. 일가는 반드시 산문 기록물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일기’는 산문을 중심으로 사항과 사실을 直書한 것을 말하며, 歌詠을 통해 심회토로를 위주로 하거나 함축의 미학을 구사한 것은 제외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기’ 가운데는 타인에 의해서 實記 대신 작성된 行錄의 부류가 있으나, 이것들은 엄밀한 의미의 일기로는 보기 어렵다.BR 일기 가운데서도 공적 보고와 기록의 목적을 지니지 않는 개인일기는 형식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다. 저자가 생활한 지역의 명소나 풍속, 만난 사람들과의 교유관계, 官人의 일상에 나타난 여러 정치 상황 등 다양한 내용들이 적혀있어 조선시대의 소소한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개인일기는 현대인이 연상하는 협의의 일기와 부합하지 않는다. 근대 이전의 일기는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진술을 위주로 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공적, 사적 행력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는데 그치고 감상을 배제한 경우가 많다. 또한 남에게 보이거나 출판하려는 의도 없이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이나 동료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에서 집필하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 일기는 曆書에 적는 일이 많았으며, 陰晴을 기록했다. 일기는 그날그날의 번다한 일을 적어 비망의 자료로 삼은 것을 넘어서, 天道의 운행을 살핀다는 뜻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개인일기는 특히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삶의 기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편, 사대부 지식층은 향촌 속에서 자신과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려고 분투하고 학문적 탐색을 하였으므로 그들이 남긴 일기는 향촌생활의 생생한 모습을 담는 경우가 많았다. 사대부 지식층은 대부분 한문으로 일기를 작성했지만, 간혹 한글로 일기를 적기도 했다.BR 개인의 일기는 행력만을 간단히 적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작성한 시문, 서찰 등도 모두 등사해 두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해당 저자의 문중에서는 일기에 수록된 시문을 선별하여 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일기는 초고의 형태로 전해지는 경우가 있고, 후손들이 문집을 간행하면서 일기의 전체나 일부를 문집에 정리하여 수록하는 경우가 있다. 본고는 기왕의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일기의 공적 기록과 사적 기록에 대해 개괄하고, 사적 기록인 개인 일기 저술가의 계층성과 지역성에 대해 살펴보았다.BR 개인일기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국내 편력 일기, (2) 이역 長程일기(조천연행, 심양왕환 기록, 동유기, 표해록, 피로일기), (3) 自敍 일기(축년일기, 단기일기, 상례일기 등), (4) 유배일기, (5) 사건일기, (6) 진중일기, (7) 사환일기(암행일기, 부북일기 포함), (8) 경연관 일기, 시강관 일기와 거가독서일기, (9) 간역일기와 상소일기, (10) 천주교 순교 일기BR 조선시대 개인일기의 저자들은 詞章에 능한 문필가들과 중간 무인층, 일부 사대부여성에 대체로 국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서술의 시각이나 서술 태도, 서술방법은 계층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개인일기는 기존의 사료에서 결락된 부분을 보충하거나 추정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일기’의 사실 인증의 층위, 기록물로서의 가치, 문체적 특성 등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가 더 진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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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一人稱代名詞 本義 分析

한자의 대명사는 대부분 가차이다. 따라서 대명사로 쓰이는 한자는 그 본의가 따로 존재한다. 가차자는 은나라의 갑골문 시대부터 사용되어 그 유래가 오래되었는데, 갑골문의 가차자 비율이 역대 문자 중 가장 높았다. 假借는 새로운 언어가 생겼을 때 문자를 만들지 않고 이미 있는 글자 중 음이 비슷한 글자를 빌려쓰는 방법이다.BR 가차자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본래부터 本字가 없어 기존의 글자 중 同音인 글자로 가차하여 쓰는 경우와 본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음이 같거나 유사하여 다른 글자를 대체하여 쓰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假借字의 字義는 자형과는 상관이 없고, 오히려 자음과 상관이 있다. 某 한자를 일정 기간 동안 가차의로 사용하게 되면 그 한자는 가차의의 전용자가 되어 본의를 잃어버린다. 한자의 인칭대명사는 가차의이기 때문에 본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가차의로 전용되면서 본의로는 사용되지 않게 되므로 자형에 나타난 자의와 부합되지 않아 표의문자의 특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버린다. 이에 본고에서는 인칭대명사 중 일인칭 대명사로 쓰이는 한자의 자형을 분석하여 자원과 자의를 파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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