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고리키의 작품을 번역하거나 작가와 관련된 저서를 출간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901-05년 동안, 수십 편에 달하는 고리키의 작품들이 출간되면서 그는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급부상한다. 당시 그의 유명세는 프랑스 내에서 체호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에 버금갔을 정도였다. 1905년에 이루어진 <밑바닥에서> 초연은 이런 상황에서 전개되어 고리키의 열풍에 이바지한다. 당시 초연은 프랑스 연극계의 혁신을 주도하던 뤼네 포가 연출했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배우 엘레오노라 두세가 참여하여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밑바닥에서> 공연 이후, 고리키에 대한 관심은 변모한다. 1905년, 프랑스는 러시아에서 발생한 혁명에 거리를 두고 차르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모색한다. 프랑스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으로 벨에포크 시대를 맞고 있었기에 사회의 빈민층이나 개혁을 부르짖는 고리키의 작품은 프랑스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이러한 흐름은 1950년대를 기점으로 변화한다. 1950-70년대, 고리키의 작품이 매해 두 편씩 올려질 만큼 프랑스 연극인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아다모프, 다스테, 므누슈킨 등 사회 현실에 관심이 많은 연극인들이 보수적인 정부에 맞서 사회의 변화를 적극 요구한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들의 삶을 통해 러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불합리성을 다룬 고리키의 작품은 이들에게 사회개혁의 메시지를 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비록 고리키의 작품이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대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은 프랑스 내에서 팽배하던 사회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개혁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 고리키의 연극은 프랑스인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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