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는 정전협상 논의 초기 시기(1951. 6.∼10.)에 정전협정을 조기에 마무리 짓고자 했던 마오쩌둥이 왜 군사분계선 설정을 조기에 마무리 지을 수 없었는지를 시계열적으로 살펴서 그 함의를 찾는 데 있다. 연구는 6·25전쟁 기 중국, 소련 내부에서 정전협상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1951년 6월 이후로부터, 마오쩌둥의 ‘분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상회관계동학을 다루고 있다. 6·25전쟁 기 전쟁후원국으로서의 소련과 전쟁지원국으로서의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스탈린-마오쩌둥 간에 서열적 관계가 형성되었고, 정전협상 초기 군사분계선 설정 논의 시기에 이르러서 보다 전략적인 형태로 나타난 면이 있다. 마오쩌둥은 ‘정전협상 의제’를 결정하고, ‘군사분계선 설정’ 논의를 시작하면 빠른시일 내에 정전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마오쩌둥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지정학적 관점의 대(對)한반도관에 기초해서 최적의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고자 하는 한편, 미군 폭격에 의한 군사적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조기에 38도선을 중심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여 정전협정을 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의 세계전략이 맞물려 정전협상 타결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 ‘미군과의 접촉선을 중심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되 서부지역에서의 전략적 지역 등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우회하여, 스탈린의 의도를 따르되 지정학적 이점을 확보함과 동시에 내적으로 조기정전 여건을 형성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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