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資風書堂은 조선 초기인 정종~태종 연간(1398~1418)에 창건되었다. 그동안의 서당연구가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忠淸道 沃川郡에 위치한 자풍서당의 검토는 다양한 지역의 서당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BR> 자풍서당원의 科擧 급제자 명단인 『書堂連桂案』에는 28명이 등재되어 있는데, 그중에 6명이 임진왜란 이전에 급제된 인물이었다. 1636년에 작성된 자풍서당의 堂憲인 <齋中約條>에도 과거급제 관련 조항이 남아있다. 이를 통하여 자풍서당은 科業교육을 담당한 조선전기 향촌서당의 한 사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재중약조> 31개조 분석을 통해서 17세기 자풍서당의 임원구성, 재정운영, 서당 입학과정, 거접규칙, 과거급제시 포상 등 서당운영과 교육규칙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BR> 자풍서당의 인적구성을 살펴보기 위하여 서당에 소장된 儒案인 『서당연계안』을 검토한 결과 서당임에도 불구하고 1426년부터 1894년까지 28명의 과거 급제자를 꾸준히 배출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유안인 『資風書堂仙案』과 『서당연계안』을 함께 검토한 결과 300여 명에 가까운 당원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17세기에 태어난 옥천인물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 시기가 자풍서당의 전성기였으며, 서당에서 주로 옥천인물들이 교육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서당원들은 본관별로 인천이씨·옥천전씨·함양여씨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 가문은 南人계 성향을 보이면서 옥천지역 西人-老論계 사족과 대립하며, 書院을 이용한 鄕戰도 불사하였다. 그러나 결국 조선후기 중앙정계에서 서인-노론이 패권을 잡으면서 자풍서당 당원들은 옥천이라는 향촌사회에서조차 힘이 약해진다. 이를 통하여 서원뿐만 아니라 지역에 위치한 서당 역시 조선후기 당쟁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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