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초 왜구 투항에 관한 최초・최대 규모 사례인 1396년(태조5) 12월 9일 나가온 왜구 집단 투항의 배경 및 양상을 고찰하면서, 이에 관한 기존의 통설적 견해를 재검토하는 것이다.BR 기존의 통설적 견해는 왜구 투항의 주된 배경을 ‘조선 조정의 회유책’에서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사료상 근거가 없고 오히려 기존 사료의 문언과 모순된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396년 12월 김사형 정벌군 출진이 나가온 왜구 집단 투항의 배경이었다는 견해를 다음 4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BR 첫째, 나가온 왜구는 1396년 11월 하순부터 12월 초까지의 기간 중에 있었던 조선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김사형 정벌군에 관한 첩보를 입수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가온 왜구 집단은 조선 조정의 적극적 군사 조치에 위협을 느껴 급히 투항했던 것이다.BR 둘째, 김사형 정벌군은 이키·대마도 정벌 및 한반도 내에서의 왜구 토벌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갖고 결성되었다. 즉 조선 조정은 당시 왜구 근절 목적을 위하여 조선의 국방력을 김사형 정벌군의 명령 체계 하에 통합시켰다고 보인다.BR 셋째, 나가온 왜구 집단이 투항함으로써 김사형 정벌군은 실제 이키·대마도 정벌 없이도 출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이키·대마도에서의 실제 전투가 없었음에도 조선 조정은 김사형 정벌군의 귀경을 크게 환영하였다.BR 넷째, 나가온 왜구 집단의 투항은, 자신들의 병선 및 병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선에 대한 적대행위만을 중지하는 정도의 제한적인 투항이었다. 조선 조정은 항왜들을 경계했으므로, 항왜 집단 중 구륙, 나가온 등 지도자들을 서로 분리한 후 10명 정도의 소수 인원만 붙여서 순차적으로 한양으로 상경시켰다. 또한 조선 측은 경상도에 남은 나머지 항왜 세력을 섬멸하고자 하는 시도를 최소 2차례 이상 계획 또는 실행하였다.BR 조선초 왜구 투항에 관하여 확인된 위와 같은 사실들은 ‘조선 조정의 회유책’을 위주로 하는 기존의 통설적 견해로는 설명될 수 없다. 기존의 통설적 견해 및 이에 근거한 조선초 향화왜인에 대한 연구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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