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신라의 명필 金生의 글씨로 확실한 것은 고려 초의 집자비인 太子寺郞空大師白月栖雲塔碑(954)와 목판본인 田遊巖山家序다. 전자는 결구 중심이지만 원의가 살아 있고, 후자는 번각본이므로 원의가 많이 사라졌다. 따라서 김생 글씨 연구의 기준작이면서 그의 필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집자비를 통해 김생의 서예를 살펴보았다.BR 崔仁渷과 純白이 지은 낭공대사비는 김생의 해서와 행서로 집자되었다. 또 행서 필의가 있는 해서, 해서 필의가 있는 행서도 혼용되어 해서와 행서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 김생의 출중함을 보여 준다. 그의 해서는 웅강무밀한 북위풍이 주를 이루고 부분적으로 동시대 당나라의 안진경풍, 이전의 고신라풍도 있다. 북위 해서에 근거한 그의 힘찬 행서는 유려한 왕희지 행서와는 구별된다.BR 이 비는 신라에서 6세기 말부터 사용된 북위풍 해서가 7세기를 거쳐 8세기 김생에 의해 무르익었음을 알려 주고, 김생은 8세기부터 신라에서 유행한 왕희지 행서를 배웠겠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독창적 서풍을 창조했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서성 왕희지와 해동서성 김생은 차별성을 말할 수 있을지언정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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