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그간 우리의 재판실무나 법해석학에서 판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의 문제가 간과되어온 면이 없지 않았다. 판례는 법원(法源)이라 할 수 없지만 사실상의 구속력을 갖는다는 통념적인 이해가 판례에 관한 근본적이고 생산적인 이해를 정립하는 데 장애가 되었는데, 실상 판례는 법률가의 법 해석에 있어 출발점이 되므로 판례가 후속 사건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올바른 법 해석을 도모할 수 없다.BR 본고는 영미법계 국가에서와 달리 선례구속의 원칙이 제도적으로 수용되고 있지 아니한 우리 법제에서는 판례가 선례로서 구속력을 지닐 수 없음을 재차 확인하면서도 이에 머물지 않고, 판례가 갖는 힘을 이론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판례가 갖는 힘의 근거를 심리적 구속력, 권위적 구속력, 설득적 구속력, 관행적 구속력 등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설명들 중 그 어느 것도 판례의 본원적인 힘에 접근하지 못한다. 다만 관행적 구속력 이론은 판례가 지닌 힘의 강도를 적당한 수준에서 설명하면서도 그 힘이 내포한 규범적 근거를 드러내는 주장으로서 여러 이론들 중에서 비교적 납득할 만한 입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법관들이 개별 사안에서 추구하는 원리적 일관성이 단순히 수단적 가치를 넘어서 수행적 가치를 갖는다는 점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는 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BR 본고는 판례가 지닌 규범력의 근거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판단해야만 하는 통합성의 이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우리 헌법 제11조 제1항에 규정된 법 앞의 평등원칙에서 유래하는 요청이기도 하다.BR 이에 따라 후속 사건을 맡은 법관은 판례를 원칙적으로 존중할 의무를 지는데, 판례가 원칙적 존중을 요구한다는 것은 판례가 사법적 판단에 있어 ‘역치(閾値)’로 작용함을 뜻한다. 판례의 견해에 완전한 동의를 표하기 어렵다고 생각할지라도 법관은 이에 따르지 아니할 특별한 근거가 없는 한, 판례를 통해 제시된 법에 관한 이해를 후속 사건에서도 일관되게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긴다.BR 판례 이탈의 예외적 정당화 사유로서 ① 판례의 견해가 법에 관한 명백하게 잘못된 이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때(인식적 측면), ② 판례의 잘못된 견해로 인하여 광범위한 법익 침해나 부정의 등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때(결과적 측면)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본고는 전자와 관련하여 보다 세부적인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한다.BR 판례의 준거력은 재판 전제로서의 논점인 주론에 한하여 미친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법적 삼단논법에서 대전제에 위치하는 법명제이다. 한편, 판례를 분석적으로 고찰할 때 이유명제와 결론명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판례의 준거력은 이유명제와 결론명제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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