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서력기원 6세기 중반,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소피아’ 대성당을 재건축한다. 이 건축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축소모형이자 하나님이 거하실 장소라는 관점에서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의 전통을 잇는다. 하지만 대성당은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는 방형 건물 본채(‘땅’ 상징)와 바실리카 양식에서 벗어난 반구형 천장(‘하늘’ 상징)을 조합한 혁신적인 건축 양식을 통해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구조와 형태에서 모세 성막과 솔로몬 성전과 다른 차별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대성당은 6세기에 우주론과 관련해 혁신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증거물로 이해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소피아 대성당이 봉헌된 537년과 재봉헌된 562년 사이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는 기독론과 우주론을 중심으로 충돌한다. 이에 황제는 5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소집하여 두 학파의 대표자 3세기 오리게네스와 4세기 테오도로스를 정죄함으로써 논쟁에 (임시) 종지부를 찍는다. 오리게네스와 테오도로스는 “모세의 성막은 우주의 모형[τύπος]이다”라는 소피아 대성당의 건축 원리이자 그리스도교의 전통 신념을 공동 수용하면서도 이 바탕 위에 서로 다른 형태와 구조의 우주 모형론을 제시했다. 모형(성막)에서 실체(창조 세계)로 옮겨가는 과정, 즉 성경으로부터 창조 세계를 이해하는 해석 과정 어느 지점에서 두 대표자는(그리고 양대 학파는)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오리게네스의 구형 우주론과 테오도로스의 천막형 우주론은 그들을 정죄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축한 소피아 대성당에서 위·아래로 공존하게 된다. 이 논문을 통해 6세기 소피아 대성당은 우주 모형론 논쟁을 두고 황제가 내린 건축적 결론인 동시에, 이후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 벌어진 그리고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는 우주론 논쟁에 핵심 되는 질문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적 상징임을 주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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