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에서는 고고자료(고분․취락․부장품)를 중심으로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의 성장과 변동과정 중에 백제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3세기 중엽 이후 백제가 맹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영산강유역에서는 전용옹관(1․2형식)의 등장하고, 제형분이 발달하였다. 영산강유역 마한세력과 백제와의 관계는 369년 근초고왕의 남정 이후에 나타난다. 근초고왕의 남정은 백제의 지방지배 확대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4세기 후반에 대형 전용옹관(3형식)과 제형분의 대형화(수평확장) 등 마한세력의 독자성이 인정된다. 이 시기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은 백제의 직접지배권 안에 포함되지 않고, 백제와 왜의 교류․교섭관계 속에서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백제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5세기 후반 이후 영산강유역은 중핵지역을 중심으로 고총고분이 등장하고, 새로운 매장시설과 분형인 횡혈식석실과 장고분이 등장한다. 매장시설에서는 다양한 계통의 부장품을 통해 다양한 정치세력과의 교류․교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5세기 후엽 이후 복잡한 국제적 정세에서 백제가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영산강유역 마한세력들은 왜․중국․가야․신라 등 다양한 정치체와 교류․교섭관계를 가지면서 독자적인 입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또한 백제의 새로운 우위적 파트너가 되기 위해 내부적으로 경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은 백제와의 관계가 이전보다 예속화(위세품)되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 독자성을 유지, 발전(고총고분․부장품)한 것으로 생각된다. 6세기 중엽 이후 영산강유역의 중핵지역인 나주 복암리일대의 고분군에서 사비기 석실의 영향으로 소형화, 정형화된 석실들이 확인된다. 복암리일대 고분군에서 신분표상품인 은화관식․관모틀, 대금구가 집중 출토되어 영산강유역 마한세력들은 백제의 완전히 복속된 것으로 이해된다. 6세기 중엽 이후 영산강유역 마한세력(복암리일대 세력 등)은 백제에게 완전히 복속된 이후에도 높은 지위를 유지하면서 재지적인 특성의 석실(복암리유형)을 축조하거나 왜와의 교섭 창구 역할을 하는 등 어느 정도의 지역색을 유지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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