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는 김승옥의 작가 이력의 처음과 끝에 위치한 「환상수첩」과 「서울의 달빛 0장」을 함께 검토함으로써 김승옥의 소설 세계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이나 주제의식을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비 본고에서는 「환상수첩」과 「서울의 달빛 0장」이 공통적으로 윤리적 타락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환상수첩」에서도 「서울의 달빛 0장」에서도 우리는 윤리적 타락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인물들의 공통된 곤경을 관찰할 수 있으며, 그러한 타락이 역시 공통적으로 사랑이라는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동일한 주제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방식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혹은 변주되어왔는지 검토하고자 했다.<BR> 「환상수첩」의 영빈과 수영은 자기 세계를 확립함으로써 완전해지고자 한다. 그들에게 자기는 죽음과의 투쟁을 통해 단련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강인한 인간이 되어 죽음을 극복하거나 혹은 완성하고자 하는 두 사람에게 사랑은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서의 자기를 전적으로 상실하게 만드는 타락이다. 마찬가지로 선애와 윤수에게도 사랑은 자기를 절대적으로 상실하게 만드는 타락이지만, 그러나 이들에게 사랑은 자기를 상실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완전하게 만드는 타락이다. 선애와 윤수는 사랑을 완전히 상실함으로써 자기의 상실을 통해 더욱 완전해질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BR> 「서울의 달빛 0장」의 ‘나’와 아내에게는 반대로 타락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나’는 윤리적으로 타락한 아내를 이혼을 통해 떠나보내지만, 그러나 아내와 완전히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 ‘나’는 아내의 타락한 세계 속으로 타락함으로써 여전히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고자 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윤리적으로 타락한 존재들과 함께 윤리적으로 타락한 세계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나’에게는 윤리적으로 타락하는 것만이 아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타락은 사랑이어서 그녀는 파국적인 현재로 인해 미래를 잠식당한 남성들을 일종의 연민의 감정으로 보듬어 안는다. 죽음이 주는 슬픔으로 인해 타락한 남성들을 동정하며, 함께 죽음의 두려움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 아내는 그들과 함께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이다.<BR> 「환상수첩」과 「서울의 달빛 0장」은 모두 절대적 윤리와 절대적 타락을 설정해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환상수첩」의 영빈과 수영, 그리고 「서울의 달빛 0장」의 ‘나’의 논리에 따르면 자기 세계의 윤리는 절대적 윤리이며 생활 세계의 윤리는 상대적 윤리이다. 그들에게 상대적 윤리는 언제든 위반 가능한 사소한 것이며, 절대적 윤리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면 상대적 윤리를 위반하는 것은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환상수첩」과 「서울의 달빛 0장」에서 긍정하는 진정한 의지와 용기는 주체의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행위 속에서 발견된다. 선애와 윤수, 그리고 ‘나’의 아내에 따르면 수동적인 한계를 능동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야말로 주체가 윤리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들이야말로 자기 세계의 윤리와 생활 세계의 윤리를 뛰어넘는, 김승옥만의 절대적 자기 윤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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