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베트남전을 다룬 소설들에 대한 연구는 ‘사실주의적 재현’과 ‘유사-제국주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논의되어 왔다. 주인공 한기주의 내적독백에 주목한 기존 연구들은 안정효의 『하얀 전쟁』을 전쟁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폭력성과 무의미성을 발화한 반전소설 정도로만 인식하였다. 그러나 한기주나 변진수가 겪는 정신병리는 전쟁 일반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베트남전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텍스트의 징후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하얀전쟁』을 일관하는 한기주와 변진수의 정신상태를 우울증이라고 판단하며, 그 징후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역사(무의식적 실재)를 재구해보고자 하였다. 한기주는 베트남전에 대한 나름의 상징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상징화가 불가능한 베트남전의 경험이‘백색의 공간’과 ‘하얀 전쟁’이라는 비유적 방법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한기주는 베트남에서의 자신을 한국전 당시의 미군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한기주가 느끼는 베트남에 대한 연민과 유사성은 한국전쟁을 매개로 한 것으로서, 그 속에는 유사식민주의자로서의 (무)의식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을 이데올로기적 사명감에 바탕한 ‘반공의 십자군’으로 위치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곧 한기주는 한국전과 베트남전, 그리고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차이점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반공의 십자군’, ‘반공전사’, ‘월남의 재건과 건설의 전위’로 정형화된 참전군인의 자기정체성은 산산이 부서진다. 동시에 『하얀전쟁』에서 한기주를 비롯한 한국군에게 베트남의 전장은 남자다움을 시험하고 입증하며, 새로운 경험과 경력을 쌓는 ‘군사적 남성성’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한기주는 베트남 여인 하이와의 관계에서 식민주의자의 위치에 서서어느 정도 남성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성 역시 곧 위기를 맞게 된다. 베트남에서 한국인 고급 창녀들을 만났을 때, 베트남인과의 사이에서 남성성을 지닌 것으로 상정된 한국인 역시,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 성애화된 여성성을 지닌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아가 한기주는 베트남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베트남 여성들이 모두 하이처럼 성애화된 여성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최종적으로 한기주는 베트남전에서 그가 꿈꾸던 남성성을 획득할 수 없었음을 선언하게 된다. 귀국 후에도 한기주는 생식불능이며 성기능부전에 빠진 존재로 그려진다. 이처럼 베트남전은 젠더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상징화될 수 없었던 거대한 공백이었던 것이며, 이러한 상징화의 불가능성이 한기주나 변진수를 우울증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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