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는 백제 무왕대 對新羅戰의 전략 구상과 그 수행과정을 살펴보기 위한 글이다. 무왕대 백제・신라의 전투 지점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전투가 소백산맥 일대부터 성주・합천 以西지역에서 벌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종래의 지적처럼 가야고지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해 대신라전을 추진했던 경향이 뚜렷하게 파악된다. 반면 무왕대 대신라전의 또 다른 軸으로 이해해왔던 ‘한강 유역 공격’ 혹은 ‘北方故土수복’ 관련 사건은 비교적 소략한 편이다. ‘가야고지 방면 진출’에 비해 전투의 발생 빈도나 시간적 간격이 현저히 떨어지며, 그마저도 椵岑城전투・勒努縣습격・熊津주둔 등 일부 사건에 국한된다. 가잠성의 경우, 대체로 그 위치를 안성 죽산으로 이해해왔으나, 최근 전북 무주나 충북 영동 양산으로 비정한 견해가 주목된다. 특히 684년 報德城民의 반란 및 진압 과정을 고려하면, 가잠성은 북쪽의 한강 유역 방면보다는 익산 동쪽 방면의 교통로상에 위치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627년 웅진 주둔의 경우, 실제 공격이 단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강 유역 공격의 주요 단서로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오히려 같은 달에 신라 서변 침공을 동시에 추진했던 사실로 볼 때, 당시 웅진 주둔은 북방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신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군사적 양동작전으로 이해된다. 결국 무왕대 한강 유역 방면 공격은 늑노현 습격 1회에 불과한데, 이를 근거로 무왕대 대신라전의 전략으로서 ‘한강 유역 공격’이나 ‘북방고토 수복’을 상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당시 백제는 북방・동북방 방면에서 군사적 긴장감만 조성하고 실질적으로는 신라 왕경으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를 집중 공략해나가는 전략을 구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新州의 위아래로 고구려・백제를 방어해야 하는 신라의 상황 및 한강 유역 장악 이후 예상되는 환경을 고려한 실리적인 정책이라 하겠다. 이에 기반한 무왕대 대신라전 수행은 확대된 전선을 모두 방어해야 하는 신라에게 군사적 부담을 가중시켰고, 그 결과 백제가 신라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면서 전쟁의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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