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이 작가의 삶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를 읽어내고자 한다. 르네상스 유럽에서나 현대의 학자 및 학계에 있어서 인본주의자의 대표자로 여겨지고 있는 에라스무스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작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의 개인적인 내면생활이 거의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몇 가지 개인적이고 전기적인 실마리들을 통해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학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면서 어떤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중세의 신분제도가 살아있던 시절에 서자로 태어나 경제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으며 자라난 에라스무스는 평생 동안 평온하고 고결한 학자로서의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자신을 의도한 바와 다른 세계로 이끌며, 자신이 별로 좋아할 수 없는 수도원의 수사가 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역경은 자신의 삶에 있어 이상을 설정하고 추구하는데 있어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후견인을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유일한 위안은 고전과 성서를 읽고 학자로서 순결한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현실의 고통올 해결해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과 이상을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그 괴리감을 극복하고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신예찬』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현실을 패러디하는 과정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작가 에라스무스의 현실적인 수행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학자에 대한 풍자, 종교에 대한 풍자, 우정 및 기타 현실에 대한 여러 풍자는 자신이 현실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초연함을 추구하고자 한 행위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이 에라스무스가 40세에 이르렀을 즈음에 쓰였다는 사실은 작품이 작가의 현실 인식 및 수용의 과정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런 가능성을 바탕으로 이 글은 『우신예찬』이 작가의 개인적인 고통이 스며든 작품이며 평생 동안 작가가 추구한 이상과 현실 간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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