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연구는 조선 후기 충남 서해안에서 대표적인 포구촌으로 성장하는 홍성 성호리 동제의 성립과 변화과정을 추적한 논문이다. 성호리 동제는 정월 대보름 당제(당맞이)와 산제, 그리고 섣달그믐(초하루 자시)에 거행되는 오방제(五方察)가 3중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성호신당상량문」(1671), 「성호신당중수기」(1851), 「제각창건기」(1908)의 기록을 분석을 통해 볼 때, 성호리 동제는 상당(산제) → 하당(당제) → 중당(오방제)의 순으로 좌정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BR> 이와 같이 시대적인 배경을 달리하여 성립된 성호리 동제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두 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하나는 하당의 신격이 기존의 ‘신당지신(神堂之神)’에서 ‘임경업 장군’ 부부로 대치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당의 례인 오방제가 새롭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본고에서는 임경업 장군이 주신격으로 수용되는 배경은 어업의 성패를 좌우했던 조기잡이와 긴밀하게 관련된 것임을 논증하였다. 아울러 오방제의 성립은 18세기 후반 성호리에서 주도세력으로 부각되는 지배계층의 이해와 어업환경의 변화가 반영된 산물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BR> 성호리 동제의 지속과 변화는 임경업 장군이 신격화되는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향후 서해안 도서지역의 동제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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