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논문의 목적은 2세기 중반에서 3세기 중반 사이에 신앙고백이었던 레굴라 피데이의 내용과 형태를 소개하고, 이것에 대한 분석과 그 의미를 밝히는 논문이다. 그 당시에 쓰여 졌던 리옹의 이레네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테르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로마의 히폴리투스, 노바티아누스의 저서들 가운데 나타나 있는 신앙고백의 내용은 ‘신앙규범’ 즉 ‘레굴라 피데이’라는 이름과 함께 나타나고, 이러한 신앙규범에 대한 명칭은 레굴라 피데이 뿐만 아니라, 진리규범(레굴라 베리타티스), 교회규범(카논 테스 에클레시아스), 교회의 선포(에클레시아스티카 프레디카티오), 경건의 규범(레굴라 피에타티스)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고백들을 통하여 교부들은 지중해 연안에 거대한 이단 세력, 즉 영지주의와 마키온 사상이 기독교의 진리를 훼손하고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교회 신앙의 핵심요소들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잘못된 성서해석으로 인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신앙규범을 올바른 성서해석의 판단기준으로 간주하였으며, 신앙규범의 권위를 사도성에 두었다. 이러한 신앙규범은 이단과 성서, 전통, 이 세 가지의 요소들이 서로 간의 반작용과 상호작용의 관계를 통하여 출현하게 되었고, 세례 상황에서 나온 세례문답서가 아니었다. 신앙규범은 다양하게 표현된 고백들 가운데 일곱 가지의 공통된 내용들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창조자로서 하나님의 비분리성, 둘째는 하나님의 유일성, 셋째는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동질성, 넷째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 다섯째는 그리스도사건에 대한 계시의 일치성, 여섯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일곱째는 심판이었다. 위의 신앙규범은 훗날에 사도신경으로 발전되는 선언적인 고백, 공의회의 신앙고백, 그 외의 신조들로 이어지게 되는데, 신앙규범은 4세기 신앙고백의 전단계로서의 모습을 갖춘 신앙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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