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동아시아 근대 전환기 도덕 개념의 의미 변화를 드러내는 지표 가운데 하나로 공덕ㆍ사덕 담론을 들 수 있다. 덕의 의미망을 통시적으로 고찰해보면 그 범위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분리한 용례는 19세기말에 이르러 나타나는 근대적 현상이다. 종래 사덕은 사사로운 정이나 은혜를 가리켰으며, 공덕은 어떤 인물의 덕이나 공적의 의미로 쓰였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 공덕과 사덕 담론은 량치차오의 『신민설』에서 영향 받은 바 크다. 그런데 「논공덕」과 「논사덕」은 메이지 일본에서 국가ㆍ제도적으로 진행된 공덕 양성 운동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제를 공고히 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의 자질로 공덕을 강조했다. 량치차오는 중국의 유교가 사덕에 치우치고 공덕은 결여되었다고 진단하면서 신민이 지녀야할 정신의 핵심으로 애국심을 꼽았다. 「논사덕」에서는 중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의 효용과 사덕이 공덕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들어 유교에 관한 입장을 선회하였지만, 국가 이익에 복무해야한다는 도덕 효용성의 관점을 폐기한것은 아니었다. 대한제국기 신문과 잡지의 논설은 일본과 양계초의 논조를 수용하여 근대 국가 수립의 장애물로 공덕의 결핍을 지목하였다. 이때 공덕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 선 `대아`, `신국민`이 지녀야 할 국가사상과 국민정신을 가리켰다. 한편으로 공덕은 개인과 가족, 국가 사이의 `사회`라는 공적 영역의 탄생과 맞물려 있으나 20세기 초반 동아시아 공덕 담론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으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였다. 동아시아 근대 공덕ㆍ사덕 담론은 도덕 개념의 근대적 의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써 효용성을 앞세운 타산적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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