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杜菫(1465-1509 활동)은 명대 중기에 南京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로 같은 시기에 활동한 沈周(1427-1509), 郭詡(1456-1528이후), 吳偉(1459-1508)와 함께 當代 최고의 화가로 거명되었으며 周臣(약 1460-1535), 唐寅(1470-1523), 仇英(약 1494-1552)과 더불어 명 중기의 四大人物畵家로 거론될 정도로 인물화에 뛰어났다. 杜菫은 江蘇省 鎭江의 丹徒에서 출생하여 한 때 北京으로 이주하였지만 남경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初姓은 陸이며 字는 懼男, 號는 檉居, 古狂이고 靑霞亭長이라는 自署를 사용하였다. 成化年間 초기인 1465년경 북경에서 과거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하였고 이후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詩文과 書畵에 종사하며 직업적인 문인화가로 활동하였다. 그의 생몰년은 정확하지 않지만 현존하거나 기록에 남아있는 紀年作에 의해 추정되는 활동 시기는 1465년에서 1509년으로 成化·弘治年間(1465-1505)에 활동했음을 알 수 있고 충분한 문인적 소양과 기술적 재능을 지니고 문인화가나 직업화가들보다 폭넓은 사회계층의 수요에 부응하여 다양한 주제와 양식의 인물화를 제작하였다. 李白(701-762), 杜甫(712-770), 韓愈(768-824), 盧仝(?-835)과 북송대 黃庭堅(1045-1105)의 시 열한 수를 아홉 장면으로 그려낸 杜菫의 는 백묘법으로 묘사한 명대 詩意人物畵의 대표적인 예이며 당시 글씨로 유명했던 金琮(1448-1501)이 쓴 詩文이 같은 화면에 등장하여 書畵合璧으로 詩書畵一致의 경지를 추구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한 화면에서 詩書畵一致의 경지를 강조하는 이러한 시의도의 창작은 화가의 시에 대한 고도의 이해와 회화적 감수성 및 표현능력을 필수로 한다. 杜菫은 詩人의 意境과 시의 情趣를 공유하는 자신이 시를 대했을 때의 감흥까지도 화폭에 전달함으로 시의도의 의미를 증폭시켰으며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인물묘사와 화면구성으로 시의의 새로운 해석을 구현했다. 또한 시에 내재된 문학적 전통과 역사적 배경은 물론 詩, 書, 畵, 酒, 樂, 茶, 花卉 등 문인사회의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던 이상적인 생활이념을 통해 격조 높은 詩情과 韻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를 통해 그동안 주로 산수화나 산수인물화에서 논의된 시화의 상관관계가 인물화에서도 긴밀하게 드러나며 제작시기의 정치, 사회, 문학적, 지역적 배경뿐 아니라 문인들의 다양한 문예활동의 양상이 시의도에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의도는 문학과 회화전통의 토대에서 시의와 회화적 표현의 조화를 통해 제작자인 시인 및 화가와 감상자가 교감하며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으며 문인문화를 대표하는 회화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시의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는 명대 중기 회화의 성격과 문인문화의 다양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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