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필자는 이번 연구에서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품은 없으며 한나라에서 제작된 제품이라는 결론을 우선적으로 도출한 후, 역으로 그 연구대상을 흉노 출토품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한나라 본토와 낙랑, 남월, 하서지역 고분 출토 칠이배까지 비교대상으로 포함시켜 고찰해 보았다. 또한 본고에서는 흉노 고분에서 발견된 칠이배의 현상과 명문 내용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던 기존의 연구방법에서 벗어나 생산지를 포함한 유통 그리고 용도에 대해서도 고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매장의례를포함한 고분문화까지 살펴보고자 노력하였다. 우선 생산지를 파악하기 위해 몽골 경내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 중 명문과 보존상태가 양호한 6점을 기준으로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나라 수도 장안에 소재한 고공에서 생산한 제품이 사천지역 생산품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 본토와 낙랑, 남월지역에서 발견된 한나라 칠이배는 사천지역 촉군서공과 광한군공 생산품이 장안 고공 제품보다더욱 우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옻나무의 서식지와 모방제품 유무를기준으로 판단하여도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은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흉노의 양상은낙랑, 남월지역 칠이배가 수입품 이외에 자체 생산품도 존재하였던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판단하였다. 흉노 고분 출토 칠이배의 생산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이배의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 집중되어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원인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B.C. 1세기 한 무제가 집정한 이후 흉노 선우와 왕자, 귀족들이 빈번하게 장안을 방문 혹은 입조하였던 역사기록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입조 당시 흉노인들은 한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물품을 사여 받은 것 이외에 장안 상림원에 위치한 건장궁, 포도궁 등에 거주하면서 각종 한나라 문물을 직접 체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B.C. 1세기에는 앞 시기와는 달리 흉노 상층 계급인들에 의해 한나라 문물이 전래되게 되었으며, 그 문물 속에는 한나라 고분과 매장의례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았다. 칠이배라는 단독 유물을 통해, 한나라 고분문화의 흉노 전래라는 필자의 가설은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의 용도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필자는 흉노인들이 한나라에 요구하였거나 사여 받은조공품에는 한나라 술을 비롯하여 누룩, 고두밥 등 술을 빚는 재료들이 포함되었던 사실에 주목하였다. 결론적으로 흉노 상층 계급인들은 한나라 곡주를 좋아하였으며, 그 결과 한나라 술잔이었던이배도 함께 요구하였던 것으로 추론하였다. 또한 실생활에서 주기 혹은 식기로 사용된 칠이배는사후에는 칠반 혹은 칠안과 함께 흉노 고분에 부장되게 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시 말해 흉노 고분에 매장된 칠이배는 한나라에서 수입된 칠기와 술이 유목민족의 매장의례 중 일부분으로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남월지역에서 발견된 한나라 칠이배는 사천지역 촉군서공과 광한군공 생산품이 장안 고공 제품보다더욱 우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옻나무의 서식지와 모방제품 유무를기준으로 판단하여도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은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흉노의 양상은낙랑, 남월지역 칠이배가 수입품 이외에 자체 생산품도 존재하였던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판단하였다. 흉노 고분 출토 칠이배의 생산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이배의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 집중되어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원인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B.C. 1세기 한 무제가 집정한 이후 흉노 선우와 왕자, 귀족들이 빈번하게 장안을 방문 혹은 입조하였던 역사기록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입조 당시 흉노인들은 한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물품을 사여 받은 것 이외에 장안 상림원에 위치한 건장궁, 포도궁 등에 거주하면서 각종 한나라 문물을 직접 체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B.C. 1세기에는 앞 시기와는 달리 흉노 상층 계급인들에 의해 한나라 문물이 전래되게 되었으며, 그 문물 속에는 한나라 고분과 매장의례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았다. 칠이배라는 단독 유물을 통해, 한나라 고분문화의 흉노 전래라는 필자의 가설은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의 용도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필자는 흉노인들이 한나라에 요구하였거나 사여 받은조공품에는 한나라 술을 비롯하여 누룩, 고두밥 등 술을 빚는 재료들이 포함되었던 사실에 주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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