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에서는 역사적 내러티브에 의존한 해석이 주를 이루었던 대릉하 유역의 청동예기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했다. 특히 그동안 간과되었왔던 제 3의 요소인 북방초원문화의 유입을 감안하여 농-목 복합지대로 재편된 상말주초라는 문화적 현상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 그 결과 중원계통 청동기의 매납 현상은 상말주초의 상황에서 중국계 유이민이 기원전 15세기 이후 농-목 복합지대가 되어 인구가 급감한 대릉하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유목문화에 기반한 집단과 공존하며 독특한 제사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흔적임을 밝혔다. 요서지역을 중심으로 복합사회가 발달한 내몽골 동남부/하북/대릉하 일대의 문화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제사위주의 북동촌-위영자유형, 청동제련기술에 기반한 청동제련 기술을 담당한 집단(희작구유형), 전차와 카라숙 계통의 무기를 사용하는 집단(백부-소하남유형), 그리고제사를 담당한 집단(북동촌-위영자 유형)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시기적으로 기원전 13~9세기사이에 지역을 달리해서 각자의 세력을 형성했다. 물론, 그들은 복합사회를 이루고 살았음은 분명하지만, 국가로서의 체제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각자의 특성을 갖추고 병존하면서 이후 고조선 성립의 기반이 된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대릉하 유역의 청동예기를 남긴 사람들은 제사체계를 기반으로 이 지역의 새로운 세력의 형성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제사 용기는 ‘화변력’의 전통, 도마계통의 청동기, 동물 장식의 도입, 입석 제사유구 등당시 중국 북방지역의 농-목 복합지대에서 맞게 재창조되었다. 이렇게 재편되는 사회에서 중원지역의 청동기를 제사체계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데에는 상말주초라는 상황으로 은계의 유이민이 발생했고 중원 청동예기의 도입이 용이했던 상황도 일조했다. 하지만, 이후 연국이 공고화되고 이러한 제사용기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위영자문화 단계에서는 소형의예기 1~2기를 묻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이후 그마저도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제사체계는 유라시아 전차문화의 확산에 따라 이 지역으로 도입된 다뉴경의 전통과 비파형동검으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농-목 전환기의 문화 재편 과정에서 보이는 ‘중원예기의 선호’와 ‘초원계 전차와 무기의선호’라는 두 전통은 중국 북방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바, 당시 동아시아와 유라시아 초원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의 소산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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