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의례변화는 당대 사람들이 그 시대가 부과하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정치 경제의 여타의 변화와 달리 의례는 가문과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조직해온 뿌리 깊은 전통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1934년 발포된 『의례준칙』은 식민지 동화정책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신주는 무시되었고 호곡은 무의미한 가장허식으로 폄하되었다. 상여 선소리가 금지되고 운구 때에 차량을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 규정이 개입되었다. 이는 죽음의 의례에서 격발되는 감정의 최고치를 무화시키고, 근대적 편의를 교묘히 혼합시킴으로써 민족 전통의 이데올로기를 점진적으로 부식시키는 장치였다. 조상숭배와 제사금지 규정으로 상례 실천에 수세적이었던 가톨릭 상례는 서구 기독교 의례 안에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가미하여 절충되었다. 그것은 교계제도와 교회주의에 치중한 상부구조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신자들의 자발적인 상호부조 운동에서 구체화된 것이었다. 『의례준칙』에 의한 강제적 변형과 기독교 의례와의 절충이라는 부분적 습합 속에서도 한국인들이 포기할 수 없는 예(禮)의 요소들이 있었고, 변화는 지연되거나 기형성을 띠었다. 그것은 ‘의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의식을 말해주는 것이며 독일 선교사들의 시선에 한국인들의 특유한 의식(意識)으로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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