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는 가라후토에 있어서 신사의 창건과 신사정책은 일본 정부의 가라후토의 개척과 일본인 이주라는 상호 밀접한 관계 속에서 추진되었음을 인지하고 그 특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에도시대 후기에는 어장과 상업교역에 종사하는 일본인은 에도막부로부터 허가를 받으면 가라후토에서 거주가 가능하였다. 그래서 어장 개발이 추진되었던 구??코탄이라는 지역에는 일본인이 거주하며 생활하였고 신불습합의 벤텐샤라는 신사가 많이 창건되었다. 1910년에 가라후토에서는 처음으로 국가가 공인하는 신사로서 관폐대사 가라후토신사가 창립되었고 개척에 관련된 신들을 제신으로 모셨다. 이는 1910년에 들어 가라후토청이 일본 내지로부터 개척과 농업 이주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농업 이주는 순탄하지 못했고, 1915년까지 가라후토에서의 ‘척식=개척과 식민’은 어업이 중심이었다. 1920년에 들어 제지・펄프 산업이 발전하면서 공업제품의 생산량 증가와 함께 일본인 이주자도 큰 폭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1921년에 가라후토청은 신사규칙을 공포하고 시행하였는데 1921년 한 해에만 창립허가를 받은 신사는 30곳이었다. 이는 척식에 의한 가라후토의 공업발전과 함께 일본인의 이주 정착이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신사의 창건도 증가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사가 많이 창립된 곳은 가라후토의 주요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어업과 제지・펄프 공업이 개발되고 발전한 지역이었다. 이상과 같은 근거를 토대로 가라후토의 신사는 ‘개척’과 ‘경제적 목적으로 일본인을 이주시키는’=‘척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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