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길은 사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근대적 길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공간은 삶의 리듬과 규율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1907년 광주-목포간 신작로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전남의 근대적 교통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남에서는 1910년대 전반에 경성목포간 1등 도로와 호남선 철도 등 기반이 되는 철도와 신작로가 갖추어졌다. 이어 1920년대에 2등 도로와 3등 도로 등의 신작로와 철로망이 전남지방 1936년 전라선 노선이 놓이면서 근대적 교통망이 완결되었다. 새로운 교통로들은 전통적인 길들을 기반으로 하여 건설되었지만 목포나 여수와 같은 신흥의 항구도시를 향해서는 전혀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교통만은 서해안과 남해안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으로 상품이 들고 나는 곳이기도 했지만 수산업 등 일본인들이 진출한 산업분야의 중심지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대로들이 한양을 겨냥하여 남북방향으로 중심축을 이루었음에 비해 새롭게 형성된 교통망은 식민지 행정중심지인 광주를 중심으로 했다. 근대적 교통망은 곧 지역 전체로 확산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누구도 근대적 속도의 바깥에 살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급격히 빨라진 속도에 반드시 적응해야 했다. 근대적 교육을 받고 교통기관을 자주 이용한 도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나마 이 속도의 규율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옛 시간의 흐름과 습관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급격히 빨라진 교통수단과 새롭게 등장한 그 규율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신작로와 철도가 만들어낸 속도와 속도의 규율은 식민지적 근대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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