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는 조선후기 民間의 救貧活動을 김해지역 金富善 부부의 사례를 고문서를 통해 접근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1769~1783년 김해지역에는 흉년과 기근으로 飢民이 속출 하고 있었다. 김부선 부부는 밥짓는 불길이 끊어지고 굶주려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구빈활동에 참여하였다. 적게는 몇 말에서 많게는 수십 석의 곡식을 내어 한꺼번에 수십 명에서 2백 명에 가까운 飢民을 구제하였으며, 이로 인해 춘궁기에는 곡식이 탕진되기도 하였다. 또 바닷가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위해 배를 매입해 주기도 하고 부과된 闕封을 責納하기도 하였다. 김씨 부부의 선행은 지역 飢民, 居住民, 儒生의 대표들에 의해 선양되었다. 이들 내용에 따르면 그들의 구빈활동이 집중되던 1783~1784년 남편 김부선은 風症으로 擧動이 어려워 부인 김씨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활동하였다. 그녀는 유교적 소양을 겸비한 인물로 집안을 대표해 재물을 내기도 하고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는 등 상황에 맞추어 기민들을 구제하고 있었다. 계묘년(1783) 이후 김씨부부의 활동을 표창해 달라는 청원이 줄을 이은 것은 이 시기 국왕의 綸音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청원자들은 府使, 監司, 御使에게 단계별로 상서하였는데, 그 내용을 통해 검토와 처분의 결과가 適時에 나오지 않거나, 처분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표출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사례로 살핀 김부선 부부의 경우는, 조선후기 기민이 속출하 는 재난 상황에서 민간의 중간 계층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인 구빈활동에 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중앙-지방, 官-民의 거버넌 스가 제대로 구비 작동하지 못하는 한계점 또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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