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백제의 무왕은 즉위 후 대수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는 수의 고구려 원정의지를 이용하여 고구려를 견제한 후 신라와의 전쟁에 집중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왜국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과는 달리 왜국과의 관계에 적극성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이다.BR 왜국은 고구려의 중개로 120여년 만에 다시 중국과 통교하였다. 백제는 왜국이 고구려와 밀착관계를 형성하고 게다가 수가 왜국에 사신을 보내자 수의 서찰을 중간에서 탈취하였다. 이는 수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의도와 함께 왜국의 친고구려 정책에 대한 경고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양국 관계는 더욱 더 냉각된 반면, 왜국은 고구려 및 신라 그리고 수까지 교섭 상대를 확대하는 多國外交를 추진하게 되었다.BR 수의 뒤를 이어 당이 등장하자 무왕은 현실적 위협으로 등장한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삼국 중 가장 적극적으로 당과의 관계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당은 자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 국제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며 삼국 간 역학관계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백제는 당의 이러한 전략에 대한 대책으로 백제 대왜외교의 전통방식이었던 왕족외교를 부활시켰다. 왕자 豊璋의 파견이다. 그리고 왕족외교의 중심에는 당시 무왕의 장자였던 義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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