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논문은 용왕을 중심으로 토끼전의 형성배경과 각기 다른 용왕의 배치에 따른 작품군의 변별점을 고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토끼전에서 용왕은 토끼나 별주부에 못지않은 중요한 인물이다. 토끼전에서 사건의 발단은 용왕이 병을 얻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토끼전의 이본은 용왕이 어떠한 면모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주제적 변이를 보이기도 한다. 토끼전에서 용왕의 비중은 토끼나 별주부에 미치지 않는 것 같지만 그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용왕은 토끼전의 근원설화(根源說話)인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구토설화(龜兎說話)>에서부터 등장한다. <구토설화>의 용왕은 이전 시기 인도와 중국의 불교설화(佛敎說話)에서 수중인물로 설정됐던 악어, 자라, 규(虯)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갖는 존재이다. 그간의 논의에서 <구토설화>의 용왕에 대해서는 주로 ‘용궁설화’의 수용 정도로 언급되어 왔다. 하지만 이는 『삼국사기』가 편찬된 시기인 고려 중기 중국과의 문학적 교류를 감안하지 못한 감이 있다. 당나라 후반인 9세기 이후에 편찬된 『전기(傳奇)』, 『유양잡조(酉陽雜俎)』 그리고 송나라 초인 10세기 중반 편찬된 『태평광기(太平廣記)』와 같은 문헌에서 용왕과 관련한 설화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용녀(龍女)가 병에 든다든지, 용궁이 바다 위의 섬으로 설정되어 있다든지의 설정은 <구토설화>와 같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중국의 설화들에서 용왕은 불교의 자장에서 벗어나 있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태평광기』는 12세기 전반 고려의 기록에서 그 언급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태평광기』보다 이른 시기 편찬된 『전기』와 『유양잡조』는 더 이른 시기에 국내에 유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편찬자인 김부식과 같은 관료들이 이러한 문헌들을 탐독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토설화>에 용왕과 용녀의 등장은 ‘용궁설화’의 수용보다 고려와 중국의 문학적 교류의 속에서 읽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한편 조선 후기 토끼전에서 사건의 발단은 <구토설화>에서의 ‘용녀의 병’이 아니라 ‘용왕의 병’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조짐은 18세기 후반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토끼전은 소설과 판소리로 향유되면서 매우 다양한 이본들을 파생시킨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용왕은 남해·동해·북해·경하수용왕(涇河水龍王)으로 토끼전의 이본에 각각 설정되면서 작품군을 이루며 나름의 전형성을 확보하게 된다. 토끼전의 대다수 이본(異本)과 현재 불리는 판소리 수궁가에서 용왕은 남해 광리왕이며, 그 외 이본에서는 동해 광연왕, 북해 광택왕, 경하수용왕이 등장한다. 남해용왕 광리왕은 『전등신화』 <수궁경회록>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며, 동해용왕 광연왕도 잠시 언급된다. 그 외의 용왕은 16세기 중반 조선에서 주석서로 간행된 『전등신화구해』에서 확인된다. 특히 토끼전의 모든 이본에서 육지의 토끼를 유인해오는 역할을 맡는 용왕의 신하로 별주부가 언급되는데, 이 별주부도 『전등신화』 <수궁경회록>에서 처음 확인되는 인물이다. 한편 토끼전의 이본 중 경하수용왕이 등장하는 작품군이 있는데, 이러한 작품에서 경하수용왕은 옥황상제의 명을 어기고 비를 잘못 주게 되어 참수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용자(龍子)가 왕위를 이어 수궁을 다스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삽화는 『서유기』와 매우 닮아 있다. 『서유기』에는 경하수용왕이 원수성(袁守誠)과 비 내리는 시기를 두고 내기를 하다가 옥황상제의 명을 어기게 되고 이에 옥황상제는 당나라 장수 위징(魏徵)으로 하여금 경하수용왕의 목을 베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경하수용왕이 등장하는 토끼전의 작품군과 같은 장면인데, 이러한 토끼전의 작품들은 『서유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서유기』는 16세기 후반에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끼전의 용왕은 그의 득병으로 인해 작품전체의 사건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존재다. 토끼전에 용왕이 정착하게 된 것은 주로 16세기 이후의 『전등신화』 및 『전등신화구해』, 『서유기』와 같은 중국에서 건너온 작품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토끼전에서 용왕이 자리잡음으로써 중세 최고 권력자를 우회적으로 비판할 수 있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경향이 판소리 수궁가의 사설에 적극 반영되는 등 다양한 주제의 이본을 파생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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