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는 朝鮮王朝實錄과 여러 문인들의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직업화가의 명칭과 성격을 파악하고, 當代 화단과 문인사회에서 그들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평가했는지를 조명한 것이다. 이는 직업화가가 처한 사회적 환경이 화가로서 그들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회화 활동과 작품, 그리고 화단에 미친 영향 등을 고찰하기 위한 근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시대 직업화가는 圖畵署에 소속되어 활동한 畵員과 민간의 私的 수요에 응하며 활동한 직업화가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들을 일컫는 대표적인 용어로 ‘畵工’ · ‘畵員’ · ‘畵師’ 등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삼국부터 고려까지 국가 도화기구의 직업화가를 일컬었던 ‘화공’은 조선초기 신분제의 재편 등 국가 시책의 영향으로 사회적 위상이 격하되어 화가를 천하게 여겨 부르는 용어로 변질되었다. 도화서의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도화서 官員을 의미하는 ‘화원’이 공식적인 명칭으로 정착되었지만 ‘화사’ 또한 御眞을 모사한 화가나 전문적인 직업화가에 대한 존칭 및 미칭의 성격으로 사용되었다. 조선후기 이후에는 도화서 화원과 민간의 직업화가들의 회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繪畵史的 기여의 폭도 확장되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그림에 대한 시각의 변화가 바탕이 되었다. 조선초기 문인들은 천한 신분인 화공이 다루는 그림에 대해 ‘천한 재주’라고 폄하하며 배타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조선후기 문인들은 화가에 따라 그림도 달라질 수 있다는 논지로 회화 활동을 금기시하는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들은 화가의 신분과 그림의 상호관련성을 주장한 중국의 文人畵論을 수용하였지만 본래 南北宗論이 문인화가와 직업화가의 구분을 통해 문인화가의 우위를 강조하고 직업화가를 폄하하는데 집중되었던 것과 달리 화가의 신분과 성격, 회화 활동의 목적과 의의에 따라 그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림과 화가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조선후기 문인들에게 회화 활동의 명분과 타당성을 제시해주었을 뿐 아니라 직업화가에 대해서도 신분에 의거한 무조건적인 폄하를 지양하고 객관적인 시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當代 화단을 주도하던 문인과 문인화가들은 회화 활동에 매진하면서 직업화가들과도 사승관계를 맺는 등 人的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화단의 성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직업화가들의 회화 활동을 통해 다양한 회화 수요층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화단의 다변화를 이끈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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