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일제강점기 김옥균에 대한 인식과 서사물에 관한 기존 연구는 김옥균을 주 인공으로 했던 문학작품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글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분절된 지점을 연결하기 위해 조선인이 주도한 언론 매체에 주목하여 김옥균이 어떻게 표상되고 유통되고 있었는지를 고찰했다. 1910년대 일본 우익단체였던 현양사 계열 인사들의 김옥균 서사는 그들 활 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의 성격이 강 했다. 1920년대 김옥균을 통해 조선인의 실천적 각성을 촉구한 계열은 사회주 의 계열의 지식인들이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는 사회주의 계급 담론을 포섭하여 계급협조를 통한 민족 일치의 담론을 생 산했다. 이 과정에서 김옥균은 ‘개혁과 독립’에 대한 회고적 상상의 매개하는 민족의 위인이 되었다. 이후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 김옥균 표상이 재현되었 고, 이를 토대로 전시체계기에는 동양의 선각자라는 의미를 부가하여 조선인 의 민족적 자각을 전쟁 참여로 끌어들이는 담론전략에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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