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우리나라 경찰무도의 역사와 도입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 경찰무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일제강점기 경찰무도의 보급은 해방 이후 추진된 한국의 경찰무도교육, 대회 및 종목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일제강점기 경찰조직의 무도 실천과 조선총독부의 무도교육의 실상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에서 고찰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일합병 이전 1894년 7월 관제개혁 때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을 통합하여 내무아문(內務衙門)소속 경무청(警務廳)이 신설되었고 일본인 경찰관들에 의한 무도교육이 실시되고 있었다. 특히 1908년 3월에 내각원유회(內閣園遊會)주최로 韓·日 양국 경찰관 사이에 격검(擊劍)시합이 거행된 것이 공식적인 최초의 경찰무도시합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경찰조직은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무도수련, 무도대회, 무사도(武士道)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 속에 전개되었고 이를 통해 일본 경찰조직은 무사도(武士道) 정신을 조선인에게 강조하였다. 이것은 무도 수련을 통해 정신적 · 육체적으로 강건한 신체를 단련하여 무사도 정신을 체현하는 것을 뛰어넘어 총력결전체제를 향한 전투능력 향상에 무게를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총독부는 1914년 학교체조교수요목을 제정하고, 학교 교육에 유술과 격검 등 무도를 체조과의 과외활동으로 채택하였다. 이 개정안을 토대로 조선에서 교육 방침을 실업교육으로 바꾸고, 지육(智育)에 편중된 교육에서 덕육(德育)과 무도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해방을 계기로 일제하 경찰무도가 완전히 소멸되고 새롭게 한국 경찰무도가 탄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일제강점기하의 경찰무도를 발전적으로 개선한 결과가 현재의 우리나라 경찰무도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경찰무도사의 연구 가치와 의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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