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부민(富民)’이라는 개념은 ‘백성을 부유하게’라는 뜻과 ‘부유한 백성’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본 논문은 개념사 연구방법론을 적용하여 ‘부민’ 개념의 의미장을 분석하였다.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자는 부민 개념은 도덕적 교화라는 이상적 목표와 안민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써 유교의 경세 담론 내에 있었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론은 감세와 절용이었다. ‘부유한 백성’에게 자신의 재산을 내어 구휼 등 재정이 필요한 사업에 조력자로 참여하도록 하자는 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도 ‘먼저 부유하게 한 뒤에 가르치자’는 부민 담론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사례에서 부민은 권력자의 수탈과 도적떼의 약탈에 의한 피해자로 등장하고 있었다. 반면 개항기 부민 개념의 의미장은 탈유교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백성을 부유하게 한 뒤에 가르친다’는 논리는 역전되어 ‘가르쳐야 백성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로 바뀌었으며, 가르쳐야 하는 내용 또한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는 서구의 지식과 학문으로 변화했다. 또한 부민의 지향조차도 정덕, 안민, 인정, 왕도정치와 같은 유교적 목표가 나라의 부강함이라는 현실적 목표로 대체되었다. 유교의 경세론과 도덕윤리에서 끌어온 언표는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었다. 개항기 부민층의 지위나 현실도 전통적 부민층과 크게 변화가 없었으나, 서구의 자본가가 부민으로 소개되고 경제주체로서 부민이 주목되었다. 또한 부민층은 개항과 이후의 개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시대변화에 적응하려는 양상도 관찰된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백성을 부유하게’ 하자는 논의와 ‘부유한 백성’에 대한 취급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의미장 안에서 부민의 목적과 수단, 논리구조 등이 근대적으로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교적 언표를 활용해 나라의 부강을 추구하자는 논의를 합리화・정당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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