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20세기 전반기의 극장연희에 대한 연구는 연희사의 연구 과제에 속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연희사 연구와 기술은 조선 말기에 그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연희사 연구의 하나로 극장 연희를 다루어보았다.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연희자의 구술, 관람객의 기록들을 참고하여 보았을 때, 20세기 전반기 극장연희는 1902년 실내 극장인 희대의 설치 이후로 시작되어 해방 무렵까지 꾸준히 지속되었다. 극장에서 공연된 연희는 무동놀음, 줄놀음과 땅재주, 탈놀음, 솟대놀음과 죽방울놀음, 인형놀음, 무당놀음, 민속놀음 등 일곱 종으로 정리될 수 있었다. 극장연희는 전통적인 야외연희와 비교하여 짧은 시간 안에 실현되어야 했기 때문에, 전통연희의 일부가 공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연희의 내용 중 전형적 모티브가 선택되었다. 또한 흥행을 위해 극장연희로서 성공한 종목은 반복적으로 공연되었고, 잠재적 수요가 있었던 무속의식이나 행위는 공연용 연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아가 극장연희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조선 후기의 연행 관례로부터 벗어나는 현상들도 나타났다. 예컨대 여성 무동패나 여성 줄꾼 그리고 여성 사자탈꾼이나 여성 상두꾼의 경우처럼 연희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여성 연행자가 전면에 등장한 점, 그리고 이봉운의 사례에서처럼 극장연희의 스타가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박춘재나 상두꾼놀음의 경우처럼 민간의 종교 의식이나 생활 속에 있었던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공연물을 생겨났다는 점, 나아가 영남의 솟대놀음이나 양주·봉산의 탈놀음과 같이 지역성을 갖고 있는 연희가 서울의 일상 공간이자 공적 공간 속에 향유될 수 있게 된 점 등은 극장연희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연희소통 상의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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