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연구는 20세기 초 일본에 수용된 베르그송 철학을 근거로 하는 ‘생명’에 대한 사유와 상상이 초기 김억 문학예술론의 중요한 인식론으로 상징주의 수용과 번역론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음을 탐구한 논문이다. 1910년대 김억의 문학예술론에 투영된 다이쇼기 일본의 생명담론의 다양한 양상을 살폈는데, 베르그송의 철학과 이를 수용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와 시라카바(白樺) 등과의 유사성과 차이, 그리고 베르그송 사상에 기초한 오스기 사카에와 아나키즘에도 주목할 수 있었다. 1920년대 초반 『오뇌의 무도』 발간과 『폐허』 동인 활동의 근저에서는 특히 시라카바의 영향 속에서 창조 주체로서 예술가는 물론 번역자의 개성과 이에 다다르려는 예술가의 고뇌를 고찰했다. 그리고 생명의 약동이 창조의 요구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베르그송의 주장을 근거로 김억이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예술의 본질과 독립적 가치를 주장할 수 있었음을 고찰했다. 또한 예술가의 개성과 독창성이 발휘된 창조적 예술이 인생 생활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김억의 논리가 인생과 예술을 등치시키고, 예술의 독자적 가치와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근대사회에서의 예술의 위상을 제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김억은 베르그송의 사상을 토대로 자유롭고 동등한 생명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었고, 개인의 생명과 근대적 자아에 기반한 문학과 예술 이론을 정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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