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은 독일의 분단이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인 황폐”로부터 “자유의 극대화”를 이루기까지 독일의 통일과정을 미술과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다. 더불어 정치적인 역할에도 포커스를 맞추어 통일의 과정에서 견인차 역할을 했던 미술과 정치의 상호보완적인 관계에도 주목했다. 1945년 이후 독일은 이념적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었고 냉전 체제속 미술제전은 미국과 소련의 이념적 대리전 양상을 보여 서독에서는 미국과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추상’이 동독에서는 소련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미술로 대립각을 세웠다. 독일 통일의 초석은 수상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고 1977년 카셀도쿠멘타에서 발화된 동서 미술가들의 불화는 오히려 두 나라가 통일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으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 초 ‘독일적인 미술’의 전통을 잇고자하는 ‘젊은 야수’그룹의 등장과 그 변화를 추적하는 미술사학자들의 연구는 독일의 통일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동서독의 통일은 통일 축제에 동독의 사회주의 미술가들이 초대받지 못하면서 경직되었다. 동독미술과 문화의 소외는 노스텔지어로부터 오는 언어적 차용인 ‘오스텔지어’라는 신종개념을 생성했으며 생존을 위해 서독미술대학과의 차별화를 선언했던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의 전통유지 전략 아이디어는 성공했다. 오늘날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은 마이스터작업을 강조하며 형상미술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현의 대가들의 전통을 잇고 있는 네오 라우흐를 비롯한 라이프치히 회화의 화풍에 드러나는 ‘오스텔지어’는 여전히 독일이 그리고 독일미술이 완벽하게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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