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상해에서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나 1932년부터 1940년까지는 상해를 떠나 중국 각지를 전전해야 했다. 이 시기는 국제 정세나 경제적 여건 등 여러 측면에서 임시정부에 어려운 시기였으며, 독립운동 세력이 분열된 가운데 임시정부의 활동이 매우 침체된 시기였다. 임시정부의 의회였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도 운영이 쉽지 않았으나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다. 상황이 호전되고 1940년 임시정부가 중경에 정착한 뒤, 우선 우파 독립운동 세력이 임시의정원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으로 통합되었다. 이어 1942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 등 좌파 독립운동 세력이 임시의 정원에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임시의정원은 좌와 우를 아우르는 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 실제로 국민을 얼마나 대표할 수 있었는가라는 사실적 한계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좌우 합작운동이 임시의정원에서 상당 부분 결실을 맺었다. 이는 다시 좌우의 토론과 타협에 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헌법 개정 과정으로써 다시 한번 그 헌정사적 의의를 드러내었다. 1932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시기 임시정부헌법문서 상으로 드러나는 임시의정원의 역할은 아주 크게 변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좌익 세력의 참여로 인해 사상을 달리하는 여러 독립운동 세력을 모으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이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Disclaimer: All third-party content on this website/platform is and will remain the property of their respective owners and is provided on "as is" basis without any warranties, express or implied. Use of third-party content does not indicate any affiliation, sponsorship with or endorsement by them. Any references to third-party content is to identify the corresponding services and shall be considered fair use under The Copyright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