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932년 8월 조선문필가협회가 원고료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결성되었다. 문인의 직업단체로는 이미 1920년대에 조선문인회와 조선문예가협회가 조직된 적이 있었으나, 공황기에 접어들어 생활난과 취업난이 심해지는 가운데 원고료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자 문필가협회가 다시 조직된 것이었다. 문필가협회 회원의 구성은 문인회나 문예가협회에 비해 훨씬 다채로웠다. 문필가협회에는 기존의 작가나 평론가 등의 문학계 인사 뿐 아니라, 전업기자, 학자, 사회운동가 등이 폭넓게 참가했고 이들은 협회 조직과 원고료 투쟁을 주도했다. 또한 이념적으로 좌파 또는 우파로 분류되는 문인들이 함께 하였다.BR 신간회가 해소된 지 1년여가 된 시점에서 좌우 문인이 모여 결성한 문필가협회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원고료라는 경제적 문제를 두고 좌우 문인이 연대할 수 있는가를 두고 특히 사회주의 계열 문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오갔다. 원고료에 대한 인식은 문인의 정체성과도 연동되어 있었다. 문인 지식인들은 전통적 文士 의식에 바탕하여 민족과 사회를 계몽할 지도자, 또는 계급운동가로서 문예운동을 통해 계급투쟁을 이끌어갈 전위라는 당위적이고 지사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 켠에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직업인이자 원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전문가로서의 욕구도 성장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문필가협회를 둘러싼 논쟁은 ‘지식인’으로서의 지향과 ‘생활인’으로서의 현실 사이에서 벌어진 문인 지식인의 갈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Full Text
Published version (Free)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Schedule a c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