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은 여성선교사들이 벌인 선교사업 중에 1920년대 공중위생보건사업과 유아복지사업에 대하여 그 내용과 성과 및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자 작성하였다. 19세기 말 내한하기 시작한, 초기 기독교(개신교) 선교사들은 교육과 의료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의료 활동은 정동 보구여관, 동대문 부인병원, 평양 여성병원(후에 평양연합기독병원)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의료사업이 1920년대에 이르러 공중보건위생사업과 유아복지사업으로 확장되었다. 공중위생보건과 유아복지사업은 의사나 간호사 자격을 가진 여선교사들이 한국인의 위생상태와 유아사망률의 심각성을 인식한 데서 비롯되었다. 특히 유아들은 불결한 환경에 노출되기 쉬운 약자였기 때문에 공주보건위생사업과 유아복지사업(Public Heath and Child Welfare Work)은 함께 진행되었다. 내한 여선교사들은 서울을 비롯하여 인천, 해주, 평양, 영변, 공주, 개성, 원산, 춘천 선교 스테이션에 사회복지관을 설립하여 각종 복지사업을 벌였다. 공중보건위생사업은 서울 태화복지관에서 1924년 1월 25일 선교사 로젠버거(Elma Rosenberger)와 한국인 간호사 한신광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사업의 내용은 크게 특별강연을 통한 계몽사업과 건강검진사업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유아복지사업은 1924년 1월 공주 스테이션의 마렌 보딩(Maren Bording)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다. 사업의 내용은 건강아기 진료소, 산전관리, 가정방문, 학교건강검진, 위생 강연, 자모회, 무료 목욕소, 우유급식사업, 1년에 한 번 간호사들을 위한 건강 학원, 예방접종, Out–patient obstetrical, 육아법에 관한 간호와 교육, 베이비 주일 등 다양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 사업은 교파를 초월하여 확대되었으며 사업의 성과가 나타났다. 「동아일보」 1926년 8월 24일자에 보도된 5세 미만 사망률이 49.6%였던 것이 유아복지의 혜택을 받은 곳의 유아사망률은 5%에 불과할 정도로 현저하게 성과가 나타났다. 1931년 10월 14일자 「기독신보」는 마마와 호열자로 죽는 50세 전후의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고 있을 정도로 질병이 감소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치료방법과 예방법 실천 때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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