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명말·청초의 만주는 전쟁터로 바뀌었으며 八旗軍과 그 가족들이 入關하게 되면서 요동지역은 인구가 더욱 감소하였다. 청 또한 만주지역을 자신들의 발상지란 명목으로 封禁政策을 실시하였으며 ‘人’자형 柳條邊을 설치하여 漢人의 이주와 조선인들의 이주를 막았다. 하지만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편은 인적이 없거나 경계가 불분명한 지대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빈번하게 강을 건너 농경을 하거나 採蔘·伐木·사냥 등의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에 청은 조선인의 통제를 조선에 요청하였고 조선 또한 조선인데 대한 관리를 진행하였다. 첫째는 조선인데 대한 처벌정책이고, 둘째는 조선관리의 처벌과 장려정책이다. 셋째는 국경지역 지방의 인구유실을 막기 위한 고종의 귀환정책이며, 넷째는 崔宗範·金泰興·林碩根 세 사람을 파견하여 압록강 상류에 대한 조사였다. 압록강 건너편의 이주민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들의 보호를 필요로, 24개면으로 나누어 평안도 각 군에 편입시켜 관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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