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는 189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린 만문 『금강경』[샤를 드 할레(Charles de Harlez)가 필사본을 전사한 것]과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만문대장경 제52함에 수록된 만문 『금강경』(목판본)을 상세히 대조하여 두 문헌간의 연관성 및 만문 『금강경』 필사본의 저본과 관련한 문제점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만문 『금강경』 필사본을 필사한 사람은 칭 차이(Tching tchai)와 황족 미얀 팡(Miyan pang)이며, 필사기간은 1834년에서 1836년 7월까지이다. 이후 어느 시기에 유럽으로 전해진 듯하다. 샤를 드 할레가 입수한 필사본에는 만주어역과 한역 외에 몽골어역과 티벳어역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 필사본은 그 당시까지 유럽에는 없었고, 또 유럽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샤를 드 할레가 전사한 것에는 호경판이 없으며, 『금강경』 본문앞에 『반야심경』 및 ‘입을 청결히 하는 진언’과 개경게 등이 있다. 이러한 필사본의 체재는 목판본과 다른 것이며, 현재 우리나라 대한 불교조계종에서 펴낸 독송용 『금강경』의 체재와 매우 유사하다. 필사본과 목판본을 대조한 결과, 어휘와 구문 및 내용상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sindambi”, “bargiyambi” 등의 단어를 통해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중반 사이에 진행된 만주어 어휘의 변화 양상을 읽을 수 있었다. 필사본은 구마라집 역 『금강경』과 매우 유사하지만 범어음역에서 차이를 보이며, 목판본은 참조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Full Text
Published version (Free)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Schedule a c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