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조선후기에 이루어진 海防 논의의 추이를 살피고, 특히 18세기 조선의 해방 논의의 양상을 통해 18세기 조선인 사이에서 공유된 ‘위기의식’의 단면을 고찰한다. ‘해방’이라는 용어는 임진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의 해방 개념은 조선 조정의 해안 방어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해방과, 조선인들이 바다를 통해 침입해 올 여러 적들의 존재를 상정하고, 이에 대비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을 제시하는 넓은 의미의 해방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해방과 관련된 논의는 조선후기 내내 대체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외부 세력의 대규모 침입을 가정한 넓은 의미의 해방 논의는 18세기라는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국제정세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용한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18세기의 해방 논의는 숙종 대에는 대체로 실질적인 외부 세력(청나라, 대만, 일본, 해적 등)의 침입을 가정하여 비교적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논의한 반면, 영․정조 대에는 보다 추상적인 외부 세력(황당선, 해도에 은거한 역도의 무리 등)을 가정한 가운데 역사적 사례를 통해 해방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실질적인 외침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18세기 조선의 현실에서, 조선인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외부세력의 침입에 대한 일정한 ‘위기의식’이 공유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조선인들이 공유한 위기의식은 그들이 상정한 위기의 실재 여부와는 관련 없이, 조선인들이 바다의 방어를 지속해야 할 당위성을 제공해 주었으며, 이후 서세동점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세기에 본격적인 해방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지성사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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