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냉전기 KBS의 자유대한의 소리 일본어방송은 동아시아 냉전의 문화적 양상이 ‘공산 vs 자유’라는 ‘하나의 충돌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역사적 사례에 해당한다. 본 연구에서는 KBS의 자유대한의 소리 일본어방송이 개시된 1955년 전후 시점부터 KBS의 대외방송이 강화되는 1960년대 초반기를 중심으로 하여 동아시아 문화냉전의 시각에서 KBS의 대일(對日)방송이 등장, 변용되어가는 과정을 동아시아 문화냉전의 ‘파열과 수렴’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동아시아 문화냉전이 파열되는 시초는 식민지 시기로부터 주어졌지만 파열은 6.25전쟁기를 거치며 본격화되었다. 6.25전쟁기 사상심리전 매체였던 VOA와 VUNC의 중계를 위해 유엔사령부가 NHK네트워크를 활용하게 됨으로써 NHK의 방송출력은 증강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의도치 않게 한반도가 사실상의 일본방송 권역에 포함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한국과 일본 간의 문화적 경계는 냉전질서라는 지정학적 조건에 의해 흐려지게 되었고, 이는 전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상적으로 일본방송을 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과의 문화적 경계가 흐려지는 1950년대 초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해양의 국가경계를 둘러싼 한일 간의 외교적 마찰이 격화되는 1955년 무렵, 상대 국가의 영토로 방송전파를 보냄으로써 선전전을 강화하고자 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자유대한의 소리 일본어방송’은 개시되었다. 그러나 4.19 혁명으로 인해 자유언론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이 컸던 만큼, 대일방송 또한 일정정도 기존의 일방적인 선전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게 됨으로써 한일 간의 외교적 대립이 만들어내는 문화냉전의 파열은 점차 수렴되는 징후를 보였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7월 1일에 단행된 독립방송국 ‘서울국제방송국’의 출범은 이전 시기의 ‘2중방송’의 기술적․제도적 틀에서 한 단계 도약한‘심리전의 요람’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파열되었던 동아시아 문화냉전이 다시 수렴되는 첫 출발점이었다. 무엇보다 서울국제방송국의 모델이 같은 처지의 반공국가였던 대만의 심리전 방송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또한 1961년 7월‘서울국제방송국’의 발족 이후 표면적으로는 대일방송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경제개발을 위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추진했던 박정희 정부의 대일정책 변화에 대응하여 재일교포의 사상적 이탈과 반역을 예방하는 방식으로 대일방송의 성격을 대공적 성격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전환시키고자 한 정책이 낳은 결과였다. 이로써 1950년대 동아시아 문화냉전의 파열선은 1960년대에 들어 본래 문화냉전의 기조로 수렴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Talk to us
Join us for a 30 min session where you can share your feedback and ask us any queries you have
Disclaimer: All third-party content on this website/platform is and will remain the property of their respective owners and is provided on "as is" basis without any warranties, express or implied. Use of third-party content does not indicate any affiliation, sponsorship with or endorsement by them. Any references to third-party content is to identify the corresponding services and shall be considered fair use under The Copyright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