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는 한국 불교사에서 거의 주목되지 않은 조선초 요동 월경과 월경승 滿空과 適休의 중국 불교행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조선초 태종과 세종대의 대대적인 불교탄압 시책에 대하여 불교계가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교계 나름대로 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특히 조계종의 나옹혜근과 태고보우의 문도 계열이 두드러졌다. 보우의 문도들이 주로 신문고를 치거나 불교의 자정을 주창하였으며, 나옹의 문도 계열은 무학을 중심으로 불교계를 재편하거나 탄압에 맞섰으며, 明의 황제의 도움을 받아 불교계를 수호하고자 하거나 아예 요동으로 越境하기도 하였다. 월경을 시도하다가 海禪처럼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태종대 滿空과 세종대 適休처럼 월경하여 중국 불교계에 뚜렷한 행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滿空은 태종대 요동으로 월경한 11명 가운데 한 고승으로 洪道・洪因 등과 함께 하였는데 무학의 문도이자 나옹의 문손인 듯하다. 나옹의 문도인 듯한 만공은 월경후 북경에서 다시 해로로 이동하여 금릉 金陵 天界寺에 주석하다가 조선과 친근하며 유서가 있는 山東 泰安으로 이주하여 竹林寺와 普照禪寺를 중창하면서 불법을 널리 홍포하였다. 適休는 세종대에 승려 信乃와 信休·信淡·惠禪·洪迪·海丕·信然·洪惠·信雲 등 총 10명과 함께 요동으로 월경하여 북경에서 명 황제의 보호속에 산해관을 거쳐 금릉 天界寺에 이주하였다. 그후 그들의 행적은 더 알 수 없으나, 적휴는 북경 穀積山에서 고려 승속이 거주하였던, 특히 나옹과 문도 무학 등이 머물렀던 靈巖禪寺 근처에 般若禪寺를 창건했다. 이와같이 이와같이 조선초 승려들은 국가의 탄압에 저항하거나 월경하였는데 태종과 세종대 만공과 적휴는 중국 불교계를 유력하면서 사찰을 중창하며 중국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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