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연구는 이른바 “탈네모꼴” 계열의 글꼴이 한국의 언중(言衆)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이들 글꼴이 대중에게 선을 보이고 지지를 얻었던 1980년대 후반의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그 역사를 재구성해 보이고자 한다. 최초로 한글타자기의 상업적 대량생산에 성공한 안과의사이자 발명가 공병우는 1960년대 중반까지 타자기 사업을 순조롭게 확장해 나갔으나, 1969년 정부가 새로운 표준 자판을 발표하면서 타자기 시장에서 배제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독재정권 치하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저항하던 공병우는 재야의 한글운동과 민주화운동 단체와 폭넓은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들은 정부 표준과 전혀 호환되지 않는 공병우타자기의 지지 세력이 되었다. 한편 1980년대 후반에는 가로쓰기와 한글전용이 대세가 되고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는 등 한글 글쓰기 환경이 바뀌고,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넓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뿐 아니라 컴퓨터에 능통한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냄으로써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한글운동과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접점이 생기자 공병우타자기의 “탈네모틀” 글꼴에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시도들이 나타났고, 공병우의 영향을 받은 젊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글 ”과 같은 민간 소프트웨어에서 이들 폰트를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폰트는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세벌식 자판의 이용자는 소수에 머무르지만, 세벌식 타자기에서 비롯된 탈네모틀 글꼴은 여전히 살아남아 한국인의 언어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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